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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스테픈 커리의 히브 샷"
date: "202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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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테픈 커리의 히브 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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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리더는 일론 머스크도, 샘 올트먼도,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바로 농구선수 스테픈 커리다. 그는 정말이지 조직의 성공을 개인의 안위보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드문 사람의 표본이다. 위의 인터뷰의 첫 부분을 보자.

> Q. 스테프, 결국 파이널 MVP를 수상했네요. 파이널 MVP를 수상하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 A. 그건 잊어버려요(Forget that). 왜 그 질문부터 나오죠? 우리는 4번의 우승을 쟁취했어요. 놀라운 팀원들과 함께, 우리를 끝까지 몰아세운 보스턴 셀틱스라는 좋은 팀을 상대했습니다.

이 인터뷰에 온전히 감응하기 위해서는 스테픈 커리가 감내해 온 지난한 '억까'의 역사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NBA에서는 7전 4선승제로 치러지는 플레이오프 결승(파이널)의 최종 우승팀에서 배출되는 '파이널 MVP'의 위상이 팬덤 사이에서 기형적으로 높은데, 적게는 4경기에서 많게는 7경기를 잘 해서 받는 상인데도 82경기를 잘 해서 받는 정규시즌 MVP와 같은 급인 양 취급되곤 한다.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우승팀의 명백한 1옵션과 파이널 MVP가 동치이기에 그러할 테다

스테픈 커리는 2015년, 2017년, 2018년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고도 단 한 번도 파이널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2015년에는 명실상부 에이스로 팀의 수십 년 만의 우승을 견인했음에도 불구하고 1)센세이셔널했던 정규 시즌에 비해 득점 효율이 다소 하락했고 2)파이널 상대팀의 에이스였던 르브론 제임스가 압도적인 활약을 펼친 탓에 르브론 제임스를 묶는 데 기여한 후보 선수 안드레 이궈달라가 예상 외의 파이널 MVP를 가져갔다. 마치 어벤져스 vs 타노스와 같은 구도에서 캡틴 아메리카 포지션의 커리는 단 한 표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맛봐야 했다. 2017년과 2018년에는 웬만한 타 시즌 우승팀 1옵션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준의 활약을 펼쳤으나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당시 워리어스에는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인 케빈 듀란트가 있었고, 그가 두 번 연속으로 파이널 MVP를 수상했다. 워리어스 시스템 속 케빈 듀란트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농구 기계였기에 여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만, 개인적으로 2015년에 이궈달라 대신 커리가 파이널 MVP를 받았어야 한다고 본다.

![](/thoughts/media/stephen-curry-heave-shot/image-01.jpg)

그래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커리는 '3우승 0파엠'이라는 미명 하에 지겹게도 까였다. 수치를 계산해 보면 NBA 플레이오프 역사상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선수 열 손가락 안에 너끈히 듦에도 파이널 MVP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듀란트가 운행하는 버스의 승객 취급을 받았다. '제임스 하든(혹은 크리스 폴, 러셀 웨스트브룩, 심지어는 데미안 릴라드!)이 파엠 받으면 커리 넘나요?'와 같은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밸런스 게임의 희생양이 되기까지. 그러던 중 어엿한 베테랑의 반열에 오른 2021-2022년 시즌이 되어 그는 마침내 염원하던 파이널 MVP를 수상한다. 끔찍한 부상에서 돌아온 클레이 탐슨, 역대 최고의 팀 수비수인 드레이먼드 그린, 새로이 합류해 2옵션 역할을 톡톡히 해준 앤드류 위긴스, 당시만 해도 커리의 후계자가 될 줄 알았던 조던 풀 등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우승이었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만장일치 파이널 MVP 커리가 일등공신이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고, 팀 워리어스의 우승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테픈 커리의 우승이었다. 얼마나 북받쳤는지 그는 보스턴 셀틱스와의 파이널, 우승이 결정된 6차전이 끝나기 10초 전 코트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바로 그 경기가 종료된 직후 진행한 프레스 인터뷰에서 저런 이야기를 했으니,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퀄리티의 인간이다.

개인에의 억까는 눈물로 조용히 흘려 보내고, 기쁨과 축하는 자신이 아닌 조직의 것임을 명확히 하는 모습. 그는 진심으로 조직의 성공과 영광이 곧 자신의 성공과 영광으로 직결된다고 믿으며, 모든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끔 특별한 문화를 창조하며(물론 드레이먼드 그린과 같은 역대급 광인 앞에서는 커리도 속수무책이다), 구성원들의 기여를 올바르게 평가할 능력을 지닌 이상적인 리더다. 스테픈 커리의 리더십은 그가 던지는 '히브 샷(Heave Shot)'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히브 샷이란 쿼터가 끝나기 직전, 공격 제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볼을 상대 코트까지 운반할 새 없이 마구잡이로 던지는 장거리 샷을 의미한다. 보통 하프라인 뒤에서 급하게 던지기에 당연히 성공률이 떨어지고, 제아무리 역대 최고의 슈터인 스테픈 커리라 할지라도 실전에서의 성공률은 5%를 밑돈다. 림을 맞추기만 해도 해설진과 관중이 입을 모아 감탄할 정도니까.

대다수의 선수들은 히브 샷을 던지길 꺼린다. 농구선수를 평가할 때 득점, 어시스트 등 누적 지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효율성 지표인데, 야투율(=슛 성공 횟수/슛 시도 횟수)이 대표적이다. 한 게임에서 팀이 공격할 수 있는 기회는 제한되어 있기에, 똑같이 평균 30점을 넣는 선수라면 당연히 슛을 30개 던지는 선수보다 20개 던지는 선수가 뛰어난 선수다. 그러니까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야투율이 높을수록 뛰어난 선수다. 그러나 히브 샷은 던지면 던질수록 야투율이 떨어지는 슛이고, 기댓값이 높지 않다보니 던져봤자 평균 득점이 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다. 르브론 제임스 같은 일부 선수들은 의도적으로 쿼터가 종료된 직후에 히브 샷을 던지는데, 그러면 야투 시도로 인정이 되지 않아 야투율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정말로 역겹고 약아빠졌다).

![GOATs](/thoughts/media/stephen-curry-heave-shot/image-02.jpg)
_GOATs_

그런데 스테픈 커리는 히브 샷을 던지는 데에 망설임이 없다. 니콜라 요키치가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지만 그는 (당연히) 역대 가장 많은 히브 샷을 던진 선수이고, (역시 당연히) 역대 가장 많은 히브 샷을 성공시킨 선수이다. 히브 샷에 대한 커리의 인터뷰를 찾아보긴 어렵지만, 그가 왜 성공률이 떨어지는 히브 샷을 던지는지를 추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들어가면 좋은데, 안 들어가도 나쁠 것 하나 없으니까. '팀 득점의 상승'은 농구 경기의 결과에 영향을 주는 '실체가 있는 행위'인 반면 '야투율의 하락'은 농구 경기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 '허상'이라고 예상컨대 스테픈 커리는 생각할 것이다. 물론 아무나 이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야투율 1~2%p 깎이는 정도로는 '역대 최고의 슈터' 이미지에 흠집이 나지 않을 만큼의 공고한 위대함을 그가 쌓아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르브론이 더 짜친다. 르브론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커리보다 훨씬 위대한 농구선수인데 대체 왜?

여하튼 여태까지 그래왔고 다음 시즌에도 히브 샷을 펑펑 던져댈 커리의 모습은 분명히 내게도 귀감이 된다. 나는 이것을 인간관계와 일의 맥락으로 치환했을 때 거절 내지는 평판 하락에 대한 두려움과 비슷한 맥락에서 사고할 수 있다고 본다. 정말 크리티컬한 리스크가 존재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인간이 리스크를 과대평가하는 나쁜 관성을 벗겨내고 보자면 대부분 리스크는 제로에 가깝다. 부끄러움, 초라함, 좋지 않은 피드백 이런 것들은 (커리가 생각하는 '야투율 하락'과 마찬가지로) 리스크 축에도 못 든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쪽팔릴까봐 자제해야 했을수도](/thoughts/media/stephen-curry-heave-shot/image-03.png)
_열 번 찍어 안 넘어가면 쪽팔릴까봐 자제해야 했을수도_

최근 창업 동아리 홈커밍 행사에 갔는데, 동아리가 동아리인지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2분 간의 Elevator Pitch를 모두의 앞에서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댔다. 대부분 그날 처음 뵙는 선배님들이었고 아마 다 합쳐 100명은 됐을 게다. 대부분 선배님들이 후배들을 채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피치를 하셨는데, 다들 주저하는 분위기이기도 했고,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서는 것을 꺼리는 완벽주의 탓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가만히 있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나가서 얻을 건 있는데 잃을 건 없었다.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자면 발표를 망쳐서 나에 대한 평판이 안 좋아지는 정도일텐데, 일단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었고, 설령 그런다 한들 그게 대순가 싶었다. 반면 PoC 고객사 섭외와 향후 잠재적 투자 유치를 위한 라포 형성에 대한 니즈는 명확했다. 그래서 히브 샷을 던졌고, 변호사 선배님 명함이야 받았다만 본 목적에 대한 성과는 없었으니 굳이 따지자면 빗나간 슛이었지만 일말의 후회도 없었다.

새로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누구든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니 비단 창업가-장사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카톡이 씹혔어도 한 번 더 보내고, 메일 답장이 없더라도 한 번 더 팔로업 하고, 이전 미팅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아 목적 달성이 요원해 보이더라도 명절에 한번 더 연락을 드리는 것이 불안하고 짜치게 느껴지더라도 직빵이다. 여기서 넘어오는 순간 바로 득점이니까. 열 번 찍어서 나무가 넘어갈 수도 있는데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면 쪽팔릴까봐 안 찍는 나무꾼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삶에서의 '승리'를 원한다면 누구든 과거의 '승리자'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을 터인데, 스테픈 커리는 NBA의 역사를 훑었을 때 MVP급 선수들 중 통산 승률이 가장 높은 명명백백한 승리자이다. 히브 샷 덕분에 얻어낸 승리가 몇 승이나 되겠냐고 반문할 수야 있겠다만, 히브 샷을 망설임 없이 던질 정도로 팀 지향적인 마인드셋을 가졌기에 그는 네 번의 우승에서 항상 주역일 수 있었다. 그러니 커리가 코트 위에서 끊임없이 던지는 히브 샷은 단순한 묘기를 넘어, 개인 기록이라는 허상과 팀의 승리라는 실체를 구분할 수 있는 냉철한 판단력과 용기의 징표인 셈이다. 삶에도 야투율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를 옭아매고 갉아먹는 허상이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타인의 시선, 실패했을 때의 창피함, 당장의 작은 손해... 허나 이것이 정말 삶 전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는 계속해서 자문할 필요가 있겠다.

극적인 히브 샷은 단순한 3점 이상의 가치를 지니는데, 슛이 들어가는 순간 상대 팀의 게임 플랜이 완전히 꼬이는 한편 우리 팀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탓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하고 용기 있는 행동을 했을 때 진정한 성장이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 나의 팀원들과 친구들 그리고 가족은 내가 히브 샷을 던졌음을 인지하고 그에 감화한다. 새로운 아이디어의 제안이든, 관계 개선을 위한 솔직한 대화든,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도전이든, 결국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샷을 던지는 끈기와 용기고 던지는 자들만이 근시안적 프레임을 넘어 무언가 정말로 본질적인 성공과 기쁨을 경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테픈 커리가 첫 번째 파이널 MVP 트로피보다 네 번째 우승 반지를 높이 산 것처럼!

(그럼에도 아직까지 연애의 맥락에서는 그러기가 어렵다 - 비유가 이상한데 던졌다가 안 들어가면 앞으로 그 코트에서는 슛 연습도 못하는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