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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5년 8월의 생각들"
date: "2025.08.30"
source: "naver"
sourceUrl: "https://blog.naver.com/kilo_hotel_juliet/22398900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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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8월의 생각들

## 인정의 부재

![인정욕구가 아무리 중요해 봐야 최상위의 욕구는 될 수 없다](/thoughts/media/thoughts-2025-08/image-01.jpg)
_인정욕구가 아무리 중요해 봐야 최상위의 욕구는 될 수 없다_

일전에 창업이라는 길을 택하는 데에 수반하는 최악의 리스크는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 자신을 더 열등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탓에 발생하는 자존감과 자아 효능감의 감소가 되리라 내다본 적 있는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돈을 넉넉히 벌지는 못하더라도 쪼들리지는 않아 삶을 꾸리는 데 문제는 없고, 연애를 하지 못하더라도(이건 창업하기 한참 전부터...) 혼자 쏘다니는 것을 원체 즐겨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건강과 직결된 지점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으려 하기에 잠과 운동이 여유롭지는 못하나 부족하지도 않다. 그보다 크고 중요한 문제는 단기적으로 더 뛰어나고 유용한 사람으로 비치며 더 많이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세계를 포기하는 것에 놓여 있다.

이는 전적으로 대단히 강한 나의 인정욕구로부터 기인하는 문제인데 그간의 삶에서 인정욕구는 내게 일종의 페이스메이커였다. 학문의 본질적 즐거움과 학업에서의 좋은 퍼포먼스에 수반하는 인정의 즐거움은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나는 극히 드문 과목들(고등학교 때의 생명과학2, 대학교 때의 자료구조와 알고리즘)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후자에 의거하여 움직였다. 어찌나 인정욕구가 강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짓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자습 시간에 뇌를 예열한답시고 수능 수학 나형을 암산으로만 푸는 쇼를 한 적도 있었다. 인정이 메마르지 않을 만큼의 지능과 끈기를 타고난 덕분에 무리 없이 살아왔으나 비로소 삶에서 처음 만나는 극심한 가뭄의 시기에 진입하고 있는 셈이다.

창업이라는 길 자체가 워낙 가물었는데 심지어 뭣도 없는 학생 창업이기에 더더욱. 서울대 컴공 딱지라도 있으니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소리일 수는 있겠다만... 말하자면 초기 창업가는 걸음마를 떼는 아기와 비슷해서 주변의 가르침과 도움이 다방면으로 필요한데 아기와 다르게 인센티브(귀여움, 자신의 DNA가 후대에 전달될 가능성의 증가)를 제공할 수 없기에 훨씬 어렵고 마음도 불편한 게임이다. 동시에 뛰어난 사람으로 받아들여짐은 투자 유치를 포함한 다양한 태스크에 있어 매우 중요하기에 자기 증명 행위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대부분의 대화 상대가 내게 모종의 챌린지를 던지고 대부분의 대화 상대가 소크라테스다. 몇몇의 민낯은 정말로 오만했으며 자연히 이해관계를 탈각시킨 채 안온하게 대화할 수 있는 이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진다.

창업이 유일한 선택지가 아니며 상술했듯 인정의 총량 측면에서 우월한 행로가 눈앞에 빤히 보이기에 아쉬움은 짙어진다. Peer Group에 있는 이들이 대개 그렇듯 대기업에 갔다면, 컨설팅 펌에 갔다면, 금융권에 갔다면, 전문직 딱지를 달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들이 농담처럼 찾아든다. 그랬다면 내가 더 많은 인정을 받고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몸담았고 사랑하는 조직에 더 크게 기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유의미한 비중의 관계에서 Receiver가 아닌 Giver로서 기능하며 자아 효능감을 먹고살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만 다시 한번, 당장 덜 인정받는다고 인생이 망하거나 죽는 것은 아니며 (인정욕구가 주요한 동인이 됨은 경계해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 창업은 가장 큰 가치를 만들어냄에 따라 틀림없이 가장 크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충분한 인정 - Comfort Zone - 성장의 둔화 간 Correlation은 꽤나 높다. 그러니 이와 같은 고백은 부정적 감정을 인수분해해 실은 환각에 가까움을 보이고 싹을 뽑아버려 감정 상태를 안정적으로 컨트롤하려는 부단한 노력에 가깝다. 따라서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창업이 재미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할 거다. 무엇보다 나는 대기업에 간 나, 컨설팅 펌에 간 나보다 지금의 내가 좋고 물론 이는 자기합리화일 수 없다.

여하튼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이 혼란할 때면 역사상 가장 철학적으로 살았던 리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금언(金言)을 떠올린다. 이성적으로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말이지만 진정 이러한 방식으로 생각하기란 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다.

> 공동체의 이익과 연관이 없다면 남들을 생각하느라 네 여생을 허비하지 마라.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왜 그렇게 할까, 그는 무엇을 말하고 생각하고 노리는 걸까 등등과 같이 너 자신의 지배적인 이성을 가지고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생각함으로써 네가 해야 하는 다른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 <명상록> 3권 4장

> 거품 같은 명성이 너를 옆길로 들게 하는가? 그렇다면 모든 것이 얼마나 빨리 망각되는지, 얼마나 깊은 시간의 심연이 우리 앞에 있었고 우리 뒤에 올지, 갈채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너를 좋게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이 얼마나 변덕스럽고 판단력이 부족한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한정된 좁은 공간에서 일어나는지 생각해 보라. 대지 전체가 하나의 점에 불과한데, 네가 살고 있는 이곳은 얼마나 작은 모퉁이인가. 그러니 여기서 너에게 찬사를 보내는 자들이 있어봐야 얼마나 되겠으며, 그들은 또 어떤 자들이겠는가.
> <명상록> 4권 3장

## AI-Native 컨설팅 펌

![](/thoughts/media/thoughts-2025-08/image-02.png)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약 2-3주간 검증에 열을 올린 창업 아이템은 올해 초부터 머릿속에 돌아다니던 AI-Native 컨설팅 펌의 아이디어였다. 컨설팅 펌이 세상에 창출하는 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번다는 회의 내지는 분노 + 자동화 관점에서의 AI의 capa에 대한 낙관적 전망 + Top-down의 리서치로부터 비롯된 도메인에 대한 확신이 삼중으로 겹쳤기에 이것은 정말이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인 듯 보였다. 물론 컨설팅 펌을 고용하는 행위의 기저에는 단순히 똑똑한 외부자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비난을 흡수하고 권위를 보호하려는 목적이 있지만, 기술로서 비용 / 시간 / 퀄리티에서의 우위를 가져간다면 신뢰 장벽쯤이야 상쇄되리라 생각했다. 특히 정량적 요소의 중요성이 높고 상대적으로 일회성 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한 DD(Due Diligence)라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그러니 검증하고자 했던 가설의 요지는 결국 1)컨설팅 펌의 오퍼레이션은 AI를 이용하여 근 시일 내 자동화가 가능하며 2)신뢰 장벽은 자동화에서 오는 비용/시간/퀄리티 우위로 상쇄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그리하여 염치 불고하고 (여러 이유로 현직 컨설턴트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여겼기에) 컨설팅 펌 오퍼리, RA 유경험자, 컨설팅 출신의 학회 선배님들, (DD의 클라이언트인) PE에 계신 학회 선배님들 등 연이 닿는다 하면 연락을 드렸다. 단 한 명도 빠짐없이 흔쾌히 만나 훌륭한 인사이트를 나눠주셔 역시나 네트워크로부터 오는 관계의 비대칭성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레버리지임을 절감했더랬다(반면 링크드인으로 콜드 콜을 100명 이상에게 보냈을 때에는 누구도 답해주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가설은 틀렸다 - 물론 선배님들의 말이 능사는 아니지만 최소한 내 경험이 일천한 영역에 한해서는 나보다 높은 전문성을 지닌 이의 말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우선 자동화 가능성에 관한 1번 가설 검증을 위해서는 다소 부도덕하게 여겨질 수 있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제법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나중에 사업 잘 되고 유명해지면 이 글이 파묘될 가능성이 있기에 생략. 여하튼 해당 어젠다에 관한 전 세계 최고의 전문가 중 한 명과 인터뷰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진행할 수 있었고 그는 지금 수준 기술로 컨설팅 펌을 자동화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최소한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단언했다. 다음으로 신뢰에 관한 2번 가설의 경우 PE에 계신 선배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도 신뢰의 장벽이 예상보다 높음을 충분히 체감하고 있었지만 결정적인 것은 컨설팅 펌 출신 창업가 선배님의 조언이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사업 개발(Business Development)이 참 중요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네가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면 컨설팅 펌과 PE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그들에게 너는 이방인에 불과하기에 만나 주지 않으리라는 것이 요지. 스타트업 사람들에게는 잘 통했던 링크드인 콜드 콜 작전이 실패했을 때부터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기에 자연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Pre-DD 과정에서의 리서치, 컨설턴트들이 사용하는 SaaS 등 다양한 GTM을 고민했으나 최소한 1)내가 2)빠른 시간 내에 3)제대로 된 AI-Native 컨설팅 펌을 만들 수 있을 가능성은 0.1% 미만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빠르게 접었다. MBB는 끝내 팔란티어에게 패배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인력의 대규모 감축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기에 컨설팅 펌이 2020년대의 대졸자들이 멀리 보고 진입하기에 좋은 진로는 아니겠다는 생각(반대로 2-3년 다닐 거라면 베스트 초이스 중 하나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은 여전하나 내가 당장 뛰어들 영역이 아님은 분명해졌다. 그래도 이 과정에서 귀중한 레슨들을 얻어 복리가 쌓였기에 다행이다. AI 시대의 획득 가능한 유일한 해자는 Proprietary Data이기에 그걸 얻을 수 있는 사업하기, 학생 창업의 한계를 인지하고 무너뜨릴 수 있는 벽과 두드릴 수 있는 문을 신중하게 정하기. 다음으로는 근미래의 우점종이 될 것이 자명한 크리에이터 집단을 파보고 있다.

## Wow Moments : Google Vision, Claude Code

![](/thoughts/media/thoughts-2025-08/image-03.png)

AI 혁명은 놀라울 정도로 본질적이라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등 근래의 기술 파도와 견주어서는 안 되며 불, 바퀴, 전기 등과 비교하는 편이 외려 적절하다. 더불어 AI 혁명은 메타적으로 양성 피드백을 되먹이며 자기 자신을 가속화하고 있기에 놀라운 수준의 기술과 제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태동하고 있다. 그러한 탓에 (내 세대가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패러다임 시프트인) 모바일 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Wow Moment가 쏟아지고 있어서, 얼마간 피로감을 느끼고 무뎌진 사람들도 많은 모양이다. 철저히 이해타산적으로 AI와 AGI에 대한 FOMO를 수익으로 치환하는 작자들이 많기에 더더욱 - 샘 알트만이 대표적이고, 스레드에 상주하는 자칭 AI 인플루언서들도 포함된다.

나 또한 무뎌진 이들 중 한 명으로, Manus의 공개 이후 AI 씬에서 정말로 Jaw-dropping한 Wow Moment가 있었냐 하면 고개를 젓게 된다. 믿었던 GPT-5마저도 2020년대에 AGI를 목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완전히 꺾어 놓을 만큼의 실망감을 안겨주었고... 그러던 와중 최근 입이 떡 벌어진 신문물들을 몇 목도했으니 구글의 시각적인 생성형 AI 모델들 - (몇 달 지나긴 했으나) 영상 모델 Veo 3, 월드 모델 Genie 3, 이미지 생성 모델 NanoBanana - 이 첫 번째였고, Anthropic에서 만든 CLI 코딩 에이전트 Claude Code가 두 번째였다.

구글이 내놓은 모델들의 놀라운 퀄리티에는 단순히 'AI 기술이 이만큼 발전했어' 수준 이상의 함의가 내재되어 있는데, 이는 인간 감각의 70-80%를 차지하는 시각이 존재론적 모호성 앞에서 무력해졌음을 시사한다. 물론 청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니 감각의 90%는 전례 없는 수준의 시뮬라크르를 목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유사한 맥락에서 문제가 되어 왔던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가짜 뉴스, LLM의 할루시네이션 등은 전부 텍스트 기반이었고, 물론 텍스트가 시청각을 통해 뇌에 전달되긴 하나 결국 구분의 불가능성은 정보가 뇌에 도착한 후의 후처리 과정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구글의 모델들을 포함하여 작금의 AI 기술은 외부 정보의 도달 과정 자체를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혼돈 속에 빠뜨릴 수 있는 잠재력을 인류 역사상 최초로 가지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촉각-시뮬라크르의 기술적 구현은 메타버스의 대중화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고, 미각-시뮬라크르와 후각-시뮬라크르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 과연 그것이 유의미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한편 범 대중적 직관성은 Veo 3, NanoBanana 등에 비해 뒤떨어지나 내게 더 Wow했던 것은 2주 전 처음 사용해 본 Claude Code였다. Cursor를 처음 사용해 보았을 때에도 적잖은 놀라움을 느꼈지만, 코파운더 친구의 추천으로 사용해 본 Claude Code는 가히 충격적인 수준이었다. 가짜 개발자인 탓에 CLI에 그다지 익숙지 않았고 과연 CLI와 바이브 코딩 사이의 시너지가 충분할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15만 원 내고 써보니 의심이 싹 가셨다. 제로 투 원 과정의 높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코드 베이스라 할 만한 종류의 것이 만들어진 후의 이해도도 놀라운 수준. 물론 디버깅 과정에서의 아쉬움이야 있지만 이건 내가 더 잘 하면 그리고 LLM 성능이 조금만 더 높아지면 금방 해결될 문제다. 0에서 10까지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하면, 내 생각에 0에서 9.5까지 가는 것은 세계 최고의 개발자보다 Claude Code가 몇 배는 빠를 것이다.

아직까지 절대다수의 개발자들은 Cursor와 Claude Code는 그저 도구에 불과할 뿐 이를 사용하더라도 코드 베이스를 '코드 수준에서' 이해하고 점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현재의 성능을 감안하면 백번 맞는 말이나 이와 같은 인간의 깊은 개입의 필요성이 영속하리라 보지는 않는데, 소위 프로그래밍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조망하면 더욱 명확해진다.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ENIAC)'에 대해서는 프로그래밍 작업이 대단히 Physical했는데, 프로그램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수백, 수천 개의 전선을 뽑아 조작하는 방식으로 하드웨어 수준에서의 논리를 재구성해야 했다. 그 후 '에드박(EDVAC)'이 개발되며 펀치카드를 이용한 Binary Code의 작성이 가능해짐으로써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코딩' 작업이 가능해졌다. 이후 Binary Code => 어셈블리어 => Low-Level 언어(FORTRAN, COBOL 등) => High-Level 언어(Python, Java 등) => 프레임워크와 라이브러리(Spring, React 등)에 이르기까지 유의미한 Abstraction이 지난 수십 년간 반복되어 오며 컴퓨터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 간 간극은 점차 줄어들었고 바이브 코딩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간극이 사라졌다.

컴퓨터 공학 용어로서 Abstraction(추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하부 구조를 Black Box로 만들어 관심과 이해의 대상에서 배제할 수 있음에 놓여 있다. 노트북을 부팅할 때 실은 시스템 단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Function Call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이를 알 필요가 없음과 같은 이치다. 위에서 이야기한 코딩의 Abstraction Hierarchy에도 비슷한 논리가 적용되기에, (지금과 같은) 과도기적 시기에는 하부 구조의 이해가 경쟁우위로 치환될 수 있다만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필요성은 낮아진다. 가령 PyTorch를 사용하여 AI Application을 개발하는 개발자라면 Python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지만 Python이 컴파일되고 어셈블리어로 번역되는 하부 구조를 구태여 이해할 필요는 없다. 바이브 코딩은 Abstraction의 극단이기에 결국 극소수의 시스템 개발자들과 LLM Researcher들 - Abstraction Hierarchy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사람들 - 을 제외하면 하부 구조에 해당하는 코드를 이해할 필요조차 없어질 것이며 이는 범용적 의미에서 개발자라는 직업과 외주 개발 시장의 종말이 찾아옴을 의미한다.

## 구글과 메타 : 최후의 승자?

![내 계좌 지킴이들](/thoughts/media/thoughts-2025-08/image-04.webp)
_내 계좌 지킴이들_

시대를 정의하는 기술적 패러다임은 산업혁명 이래 수십 년 단위로 계속하여 변화해 왔고, 시대를 정의하는 기업은 시대를 정의하는 기술에 의존적임이 자명하기에 그 역시 수십 년 단위로 계속하여 변화해 왔다.

19세기 중반(철도와 전신) : 펜실베이니아 철도, 웨스턴 유니언

19세기 후반 - 20세기 초반(철강과 석유) : US 스틸, 스탠더드 오일, GE

1910년대 - 1950년대(자동차와 대량생산) : 포드, GM, 듀폰, RCA

1960년대 - 1970년대(메인프레임 컴퓨터와 트랜지스터) : IBM, HP, TI

1980년대 - 1990년대 중반(PC와 소프트웨어) :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애플, 컴팩

1990년대 후반 - 2000년대 중반(인터넷과 웹 브라우저) : 야후, 아마존, 넷스케이프, 시스코

2000년대 후반 - 2020년대 초반(모바일과 클라우드) : 애플, 구글, 메타, 아마존

2020년대 초반 - 현재(AI) : 구글, 메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OpenAI 연합

이 리스트는 다수의 파도 위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기업이 실로 드묾을 시사한다. 애플(PC / 모바일)과 아마존(인터넷 / 클라우드) 등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지만 이들 또한 AI 시대의 패권을 쥐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IBM은 PC 시대의 과실을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에 빼앗기고 회사가 거의 망할 뻔했으며, GE는 잭 웰치의 퇴진 이후 몰락을 거듭하여 세 조각(항공/헬스케어/에너지)이 나고야 말았다. 가장 주요한 원인은 소위 '혁신가의 딜레마'로, 거대 기업이 수익이 나는 영역의 최적화에 집중하여 돈이 되지 않는 급진적인 신기술을 등한시함에 따라 더 이상의 혁신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스타트업이 항상 파괴적 혁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구글도, 메타도 한때는 대학생 내지는 대학 자퇴생이 세운 듣보잡 스타트업이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넥스트 구글, 넥스트 메타가 나올 것인가? 내 생각에 AI 파도에 힘입어 넥스트 넷플릭스, 넥스트 디즈니가 탄생할 수는 있겠지만 넥스트 구글, 넥스트 메타는 탄생할 수 없다고 본다. 조금 더 대담한 예상을 해보자면 구글과 메타는 인류 문명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며, 이들은 AGI에 의한 강력한 디플레이션 압력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상 최초로 '1경($10T)'짜리 기업이 될 것이다. 나는 정말로 구글과 메타가 $10T 기업이 될 확률이 그렇지 못할 확률보다 높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이들은 ETF와 가상화폐를 제외하고 내가 보유한 유이한 개별 주식이다(당장이라도 더 사고 싶은데 돈이 없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IBM, GE와 달리 구글과 메타가 영속하리라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IBM, GE의 경영진에 비해 순다 피차이, 데미스 하사비스, 마크 저커버그, 알렉산더 왕이 특별히 뛰어난 탓인가?

호명한 이름들의 위대함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이유다. 핵심은 AI라는 패러다임의 특수성에 놓여 있다. 일단 AI 혁명은 지나치게 자본 집약적이고 데이터 집약적이라 CAPEX를 감당할 수 있는 극소수의 플레이어만이 뛰어들 수 있는 판이다. 전장이 달랐다면 OpenAI가 구글을 무찌를 수 있었을 텐데, 하필 AI 파도를 타고 싸움을 벌인 탓에 2년을 버티지 못하고 역전당했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차고에서, 저커버그는 하버드 기숙사에서 시작한 사업으로 세상을 바꾸고 패러다임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2025년을 살아가는 제 2의 잡스와 저커버그는 GPT Wrapper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기 어려울 것이다. 더불어 AI 혁명은 지나치게 범용적이기에 다른 기술적 파도(로봇, 메타버스, 바이오)를 자신의 아래로 종속시키는 행위가 가능하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이 될 AGI를 향한 레이스의 승자는 이후 패러다임의 패권을 독점함으로써 IBM과 GE의 전철을 밟지 않고 불로불사의 기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Transformer 기반 LLM 레이스에서는 구글과 OpenAI가 가장 앞서 있고, X와 Anthropic이 그 뒤를 따르고 있는 형국으로 메타는 명백히 뒤처졌다. 그러나 추론 능력과 창의력, 정확성의 측면에서 때려죽여도 Threshold를 넘기기 힘든 Transformer 기반 LLM으로는 AGI의 실현이 어려우리라 보고 있다. 그러니 다음 세대 AI를 향한 레이스라면 메타의 놀라운 인재 밀도와 데이터가 빛을 발할 것이다. 메타가 그깟 LLaMA 개선하겠다고 한 사람에 수천 억씩 주며 인재를 끌어모았을 리 없다.)

양과 질 모두에서 이 세상 어떤 기업보다 우수한 독점적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구글과 메타가 AGI 레이스의 최종 승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음은 일견 당연한 흐름으로 보이나, 이 사실을 온전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어렵다. 이들은 과거 어떤 기업과 국가도 가지지 못했던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설령 구글과 메타의 수장들이 선한 인물처럼 보인다 한들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그러했듯) AGI라는 절대 반지를 마침내 손에 넣은 후 펼쳐질 흐름은 지금으로서는 쉽사리 예측하기 힘들다. OpenAI, Anthropic 등이 손을 잡고 오픈소스 AGI를 만들거나 정부 규제에 의해 AGI의 사용이 엄밀히 제한되는 미래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만 그다지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래리 페이지에게 AGI를 맡길 수 없다는, OpenAI를 설립할 당시 일론 머스크가 가졌던 최초의 통찰이 지극히 옳았는지도 모르겠다.

여담이지만 데미스 하사비스는 내 생각에 현 지구상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임에 틀림없고, 나는 알파고와 알파폴드를 통해 그가 일군 인류 문명 단위에서의 이른바 '업적'이 일론 머스크는 몰라도 최소한 제프 베이조스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아직까지는) 마크 저커버그의 그것을 상회한다고 생각한다. 구글에 속해 있기에 오히려 저평가 받는 위대한 경영자, 위대한 공학자, 위인. Isomorphic Labs와 DeepMind는 이미 세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5년 후, 10년 후에는 지구상 가장 중요한 기업(조직)이 되어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