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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5년 10월의 생각들"
date: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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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 10월의 생각들

## 바이브 메이킹

![](/thoughts/media/thoughts-2025-10/vibe-making-editorial.png)

요새 밤낮없이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부족한 지점들이 셀 수 없이 많지만 바이브 코딩 덕분에 개발 경력이 일천함에도 빠른 속도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Anthropic에 감사할 따름이다. 달에 따박따박 30만원씩 내고 있는데도 감사하다. 아직까지 대규모의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에는 높은 수준의 개발 역량과 경험이 필요하나, 적어도 이제는 ‘개발자가 없어서 못 만들어요’는 변명에 불과한 말이 되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LLM에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니 '나는 개발 능력이 없으니까'와 같은 식으로 자신을 틀에 가두는 사고는 이 시대와 불화한다. 그러니 v0, Lovable, bolt, Base44 등 바이브 코딩 플랫폼이 수천 개씩 난립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나 바이브 코딩이 새로운 norm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자연어로 쓰인 마크다운 문서가 새로운 코드가 된 시대에 어떻게 생산성과 안정성이라는 Trade-off 관계의 두 변수를 최적화할 수 있을지를 매일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PPT나 Figma를 써가며 몇 시간 동안 어설픈 Mock-up을 만들어 발표하는 경우를 보고 있자면 가장 순수한 의미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데, 한편 최전선의 누군가는 나를 보며 동일한 맥락에서의 안타까움을 느낄 터이니 계속해서 공부하고 정진해야 한다.

아직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난생 처음으로 제품이라 할 만한 유의 것을 만들고 있자니 (특히 바이브 코딩 시대 이전의) 메이커들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끼게 된다. 일상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였던 수많은 서비스의 UI/UX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이 녹아들어 있었던가? 페이지 전환을 탭 구조로 할지 버튼으로 할지, 모달을 2단으로 하되 스크롤을 필요로 하게끔 할지 3단으로 하여 스크롤이 필요 없게 할지, DB Schema를 어떻게 구조화해야 뒷단의 operation을 최적화하면서 UX를 해치지 않을 수 있을지… PM 인턴이야 해봤자만 실상 마케터 인턴이었으니 관련된 경험이 일천하기에 매일 맨땅에 헤딩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의사결정이 옳을지’보다 더 근본적인 단에서 ‘의사결정에 고려해야 할 것들이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 그래도 하루에 12시간 개발하면서(물론 엄밀히 말해 12시간 일하는 건 내가 아닌 클로드 코드이다) 시도-러닝-성장의 iteration을 남들보다 1.5배 돌리면, 원체 완벽주의자인 데다가 장표 찍을 때 보면 디자인 감각도 나쁘지는 않으니 빠르게 높은 수준에 가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이브한 생각이 든다.

그리고 만들어보니 만들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암묵지의 크기가 대단히 큼을 절감하게 되고, 아무것도 만들거나 실행해 보지 않고 훈수만 두는 사람들 - 그들을 평론가라고 부르든, 호사가라고 부르든, 컨설턴트라고 부르든 - 에 대한 회의가 나날이 깊어져만 간다. 그들의 일은 인류 문명의 발전이든 진보든 공리주의적 관점에서의 가치를 무엇으로 보느냐에 무관하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필연적인 정보 비대칭성의 한계 속에서 메이커 경험 없이 유의미한 조언이 가능하려면 1)압도적인 지식 혹은 2)압도적인 지능을 가져야 하는데 1)의 경우 LLM을 이길 방도가 없으며 2)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들’로 남아있을 리 없다.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 대한 대단히 유의미한 극소수의 조언은 무언가를 만들어본 사람에게서 나오기에 대부분의 조언은 사실 무시해도 괜찮으며 외려 그래야 한다. 물론 이는 가령 어텐션 모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구글이 어쩌고 OpenAI가 저쩌고 트랜스포머 이후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될 것이고 허구한 날 블로그에서 씹어대는 나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이기도 하다. 경영학회 했던 시절의 내가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하고… 아마 피터 틸도 예전에 인용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아래 연설문이 작금의 심정을 대변한다. 모두가 어떤 순간에 critic이 되어야 하지만 critic을 직업으로 삼지 않고, doer를 직업으로 삼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다짐! 특히 나는 critic 성향이 짙어서 누구보다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 It is not the critic who counts; not the man who points out how the strong man stumbles, or where the doer of deeds could have done them better. The credit belongs to the man who is actually in the arena, whose face is marred by dust and sweat and blood; who strives valiantly; who errs, who comes short again and again, because there is no effort without error and shortcoming; but who does actually strive to do the deeds; who knows great enthusiasms, the great devotions; who spends himself in a worthy cause; who at the best knows in the end the triumph of high achievement, and who at the worst, if he fails, at least fails while daring greatly, so that his place shall never be with those cold and timid souls who neither know victory nor defeat.

## OpenAI와 샘 알트만

![](/thoughts/media/thoughts-2025-10/image-02.webp)

작년부터 OpenAI에 관해서라면 항상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올 초에도 OpenAI에 롱/숏 베팅을 하라면 무조건 숏에 걸 것이라는 논지의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째로 최소한 트랜스포머-LLM 패러다임 내에서의 AI 전쟁은 곧 CAPEX 전쟁과 동치로 흘러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공산이 크기에 LLM과 무관하게 별도의 안정적 수익 모델을 가진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 사이의 차이는 점점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째로 모델 성능은 linear하게 발전한다기보다는 일정 수준에서 수렴하는 추세로 보이기에 독점적 데이터와 기존 워크플로우 내지는 라이프스타일과의 연계 가능성 등 모델 성능 외의 가치가 가면 갈수록 중요해질 텐데 그렇다면 구글과 메타를 이길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트랜스포머로는 때려죽어도 AGI 못 만들 거고 결국 다음 패러다임이 무엇보다 중요할 텐데, 이는 극소수의 월드 클래스 리서처들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고, 첫 번째 이유에서 파생하는 맥락으로 인재 리크루팅의 측면에서 OpenAI가 구글과 메타에 비해 우월한 선택지가 될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요새의 생각은 말하자면 유보적이다. OpenAI가 최근 $1T 밸류로 라운드를 돌고 있다는데, 만약 실제로 OpenAI가 $1T 시총의 상장사이고 내 돈을 롱과 숏 중 하나에 베팅해야 한다면 이제는 롱에 걸 것 같다. 서두의 생각이 바뀐 것은 아니라, 여전히 AI 전쟁의 최종 승자는 구글과 메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GPT-5는 후졌고 아마 Gemini 3.0 Pro는 판도를 뒤집어놓을 것이다. AI 전쟁이 Winner-take-all 형태로 전개되지는 않을 것 같아서 유의미한 3등 또한 분명 존재할 텐데 그 자리 또한 OpenAI보다 Anthropic이 차지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허나 Ian Park 님의 뉴스레터([https://ianpark.vc/p/alert-openai-too-big-to-fail?utm_source=substack&utm_medium=email](https://ianpark.vc/p/alert-openai-too-big-to-fail?utm_source=substack&utm_medium=email))에 아주 잘 정리되어 있듯 OpenAI는 AI 버블이라는 태풍의 눈에 자신들을 의도적으로 위치시키며 회사의 명운을 실리콘밸리의 명운, 나아가 미국의 명운과 동치로 두었고, 이에 따라 실패하려야 실패할 수 없는 회사가 된 듯 보인다. 거의 폰지 사기에 가까운 순환 출자 구조와 그에 따라 불어나는 버블의 크기가 곱게만은 보이지 않기에 유보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물론 OpenAI는 이미 위대한 기업이고 그들의 최근 행보 또한 위대하다. Atlas는 영 구리지만, 수많은 Consumer App을 채팅창 아래에 종속시킴으로써 윈도우 이후의 새로운 OS로서의 표준이 되고자 함은 아주 리즈너블한 방향성처럼 보인다. 조니 아이브를 영입하여 제작하고 있는 새로운 하드웨어 또한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충분히 높다고 생각하고. 다만 AI 시장의 CAPEX-heavy함으로 인해 샘 알트만과 OpenAI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OpenAI가 지금 치르고 있는 전쟁은 이를테면 페이스북이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치렀던 싸움에 비해 현저히 난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마크 저커버그보다 몇 배는 훌륭한 경영자일 현재의 샘 알트만이 온몸을 비틀며 최선에 가까운 수만을 두고 있는데도 상황이 쉽지 않으니, 세상이 그에게 참 가혹하다고밖에는 못하겠다. 2년 만에 구글과 Anthropic 등의 맹추격에 경쟁우위를 잃고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것이 상기한 ‘Too big to fail’ 전략이 아닐까 싶은데, 산업의 입장에서 긍정적이냐를 차치하자면 그들 자신에게는 최선의 선택임이 자명해 보인다.

외람된 이야기지만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창업가들 중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꼽으라면 (물론 그의 경지에 가닿으려면 한참 멀었지만) 샘 알트만일 것 같다.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사람들 중에는 Stripe의 패트릭 콜리슨이 비슷할 성싶은데 그는 롤 모델로 삼기에는 정보가 지나치게 부족하다. 다시 샘 알트만 얘기로 돌아가자면, 엔지니어링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지만 젠슨 황,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와 달리 그 자신이 탑 레벨의 엔지니어는 아닌 점(그래서 일리야 수츠케버를 필요로 했다), 말보다 글이 매력적인 다독가로 주기적으로 롱폼의 글을 발행하는 점, 양질의 수면과 견고한 루틴을 끔찍이도 중요시하는 점, 비저너리한 스토리텔링을 핵심 역량으로 지닌 점,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 급의 반사회적 또라이는 아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투명한 구석이 있는 점까지 - 나는 샘 알트만의 불투명함이 의도적이라기보다는 기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문득 궁금해 찾아보니 실제로 샘 알트만은 (나와 같은) INTJ이기도 하다. 같은 INTJ로서 아무래도 응원하게 된다!

## 창업하는 이유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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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동아리에 들어와 한창 코파운더를 찾으러 커피챗을 하던 시절 창업을 왜 하고자 하냐는 질문을 많이 묻기도 받기도 했다. 모든 썰이 그렇듯 많이 풀 적에는 구조가 잘 잡혀있는 반면 풀지 않다 보면 녹슬고 마는데, 반 년 동안 녹슬어 버린 이유를 최근 이런저런 자리에서 질문받는 일이 있었다. 당분간은 비슷한 유의 질문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나 스스로도 반 년 사이 새로운 이유들이 생겼음을 절감하기에 두서없이 주욱 늘어놓고 한번 간단히 정리해 보기.

**1. 과천과학관 모먼트**

중간의 연결고리를 모두 생략한 채 창업에의 의지의 가장 atomic한 발원지를 찾자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말한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과천과학관 천체투영관에서 우주를 여행한 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보다 정확히는 나의 죽음 이후 시간이 흐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대뇌 피질 어딘가에 각인되었다. 제1의 선택지는 영생이나 이는 불가능했으니 제2의 선택지로서 임팩트를 극대화하는 삶을 택했고, 때마침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를 읽고 창업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니 가장 오래된 이유인데 여전히 내 달란트를 이용하여 가장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생의 행로가 창업이라는 데에는 의심을 가지지 않는다.

**2. Post-AGI**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발명품이 될 AGI의 도래에 세상은 전혀 대비가 되어있지 않은 듯 보인다. 그렇다면 이를 대비하는 일이야말로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지금 하는 일이 이 문제를 푸는 최선의 방법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지만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일론 머스크가 말한 것처럼 ‘매일 아침 일어나는 것을 즐겁게 만드는’ 종류의 일에 가까우리라는 확신은 있다.

**3. 메타 인지**

헤르만 헤세는 <데미안>의 첫머리에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며 누구도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 없다’라고 하였다. 나는 아직까지 창업보다 자기 자신에게 빠르고 깊게 이를 수 있는 길, 잠깐이나마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

**4. 위대함의 window**

AGI 이후의 인류는 UBI를 받으며 지금보다 현저히 동질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젠슨 황과 이재용, 정의선의 ‘깐부 회동’에 쏟아진 뜨거운 반응이 시사하듯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인간상은 기업가들이다. 그러나 AGI 이후의 가장 위대한 인간상은 연예인-크리에이터, 종교 지도자, 철학자 등일 것이다. 다시 말해 기업가는 인간의 Authenticity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알고리즘에 대체당할 것이다. 그러니 창업이라는 방향성 하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한 window가 얼마 남지 않았다. 길어야 15년 본다. 그 다음에 식당 차려야지.

**5. 사회적 시선**

최악의 시나리오를 믿어서는 안되지만 한 번쯤 상상해 볼 필요는 있다. 불과 십수 년 전만 해도 실패한 창업가라고 하면 연대보증을 서고 빚더미에 나앉아 길거리로 쫓겨난 거지 꼴을 상상하기 쉬웠다. 그런데 요새는 실패한 창업가에 대한 대우가 훨씬 좋아졌다. 재기 불능 상태를 강요하지도 않고, 취업 시장의 온도든 사회의 시선이든 제법 괜찮아졌다.

**6. 이왕 할거면 일찍**

오늘은 내 남은 인생에서 가장 리스크가 적은 날이다. 당근에서 인턴을 할 적 창업에 대한 뜻이 있는 엔지니어 분들을 몇몇 보았는데 다들 최소 n년씩 다니셨더랬다. 심지어 대부분 가정도 있으신 분들이라, 감히 추측건대 당근의 우수한 복지와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창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게다. 나도 결혼하고 아이 가지고 나서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창업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7. 제품 개발의 용이성**

샘 알트만이 이야기했듯 지금은 역사상 창업하기 가장 쉬운 시대다. 물론 모두가 쉬워졌기에 경쟁이 줄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만, 소위 검증에 필요한 시간과 iteration cycle이 이전에 비해 현저히 짧아졌다. 위의 Post-AGI에 대한 예측과도 연결되는 맥락에서 말하자면 시간이 더 지나면 창업이 너무 쉬워진 나머지 창업이 불가능해지는 역설적 상태에 처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decade는 일종의 sweet spot이고 이걸 놓치기는 아깝다.

**8. 영생**

확률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긴 한데, 알파폴드가 증명했듯 AI 기술은 인류 궁극의 미스터리였던 생물학 분야의 난제를 하나둘 해결하고 있다. 그렇다면 AGI는 알파폴드의 기저에 있는 AI 따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물건일테니, 그것이 등장한다면 어쩌면 영생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 한들 상용화되기까지는 어마어마하게 긴 세월이 걸릴 것이고, 이는 곧 초기에는 영생의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비쌀 것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건강한 상태의 내 몸을 ‘고정’할 확률을 조금이나마 가지기 위해서는 최대한 젊은 나이에 최대한 큰 돈을 벌어야 한다. 월급쟁이로 살다가는 죽거나 50-60대의 몸으로 영원히 살아야 한다(물론 이 역시 죽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 여전히 나는 죽기 싫다.

**9. 취업 소거하기**

취업이라는 개념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아마존이 최근 1.4만 명의 화이트칼라 본사 직원을 해고하며 신고가를 경신했음은 인류가 역사상 최초로 경제 성장이 고용의 축소와 맞물리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들 다 하니까 나도 취업해야지 생각하는 건 근시안적이고 역사적으로 과도기에서 다수는 자주 틀린다. 지금 취업을 하는 것은 라이선스의 보호 등으로 인해 한파에서 자유로운 일부를 제외하면 과장 좀 보태 네오 러다이트로서 샘 알트만, 데미스 하사비스,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다리오 아모데이에게 반기를 들겠다는 선언에 가깝게 들린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업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질 것 같기는 한데 여기까지는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

**10. 꿀잼**

위의 맥락과 무관하게 회사에서 일하는 건 영 재미가 없다. 지금까지 세 회사에 몸담았고 그때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몰랐는데 창업을 해보니 그때 얼마나 재미없는 일을 했는지 이제서야 알겠다. 권한의 문제라기에는 솔드아웃에서의 내 권한은 분에 넘치게 컸고 조직 문화의 문제라기에는 당근보다 좋은 조직 문화를 지닌 회사를 쉬이 상상하기 어렵다 - 토스에서도 일해봤더라면 아예 미련이 없었을 것 같긴 하다. 여하튼 미하일 칙센트미하이가 <몰입>에서 이야기했듯 조직의 부품으로 살아가며 재미있는 일의 조건에 해당하는 명확한 목표, 즉각적 피드백, 자율성, 통제권, 도전의 난도와 현재의 실력 간 균형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나는 원체 Disagree and commit이 잘 안되는 사람이기도 하고…

사실 이 모든 이유를 늘어놓는 건 재미도 없고 TMI에 가까워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긴 하겠다. 보통 시간순으로 Phase 1 / Phase 2 / Phase 3으로 나누어 말했는데 그게 낫나 싶기도… 다른 좋은 구조화 방법이 있을지 종종 고민해 보아야겠다.

## 세계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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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media/thoughts-2025-10/image-04.jpg)

한국이 세계에서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나라 중 하나임이 자명함에도,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한국 영화의 평균적 퀄리티는 외국 영화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후진 한국 영화는 얼마든지 자국의 관객에게 닿을 수 있는 반면 후진 외국 영화는 웬만해서 이역만리의 관객에게 닿기 어려운 탓이다. 그래서 개봉작에 관해서라면 만족도 최대화의 관점에서 철저히 문화 사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당장 올해만 하더라도 (엄밀히 말하면 미국 영화지만) 봉준호의 <미키 17>과 박찬욱의 <어쩔수가없다>를 제외하고 극장에서 한국 감독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 홍상수, 에드워드 양,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좋아하지만, 그들을 어중되게 뒤섞은 듯한 많은 한국 독립영화가 견지하는 특유의 톤에 개인적으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 물론 개중에도 정말 훌륭한 작품들이 많음은 자명하다. 문학의 경우라면 모국어가 주는 특유의 매력이 있는 것 같은데 영화는 그 맛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사설이 길었는데 이러한 이유로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드문드문 만났기에 큰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는 진술이나 여하튼 오랜만에 걸작이라 칭할 만한 한국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다. 바로 윤가은의 <세계의 주인>. 일군의 독립영화 중에서도 각별한 인기를 끈 그녀의 전작 <우리들>과 <우리집>을 보지는 못했고, 사실은 굉장히 인상 깊게 본 <남매의 여름밤>의 윤단비 감독의 신작으로 착각하고 예매를 했었다. 관람 직전에야 착각을 인지해 기대감이 얼마간 식은 채로 봤는데 영화가 끝난 후에는 강렬한 여운이 남아 엔딩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뜰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흠을 잡으라면 얼마든 잡을 수 있는 영화다. 특정 장면 이후의 후반부 서사는 극적인 전개를 위해 지나치게 편의적인 방식으로 복무하고, 나와 같은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도 수월하게 의도가 읽혀 오히려 감흥이 떨어지는 연출도 눈에 띈다. 촬영과 편집의 측면에서도 두드러지는 흠결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여 (서두에서 비판했던) 대부분 독립영화의 수준을 넘어섰냐 하면 전혀 아니고 으레 봐왔던 그 정도 수준이기에 본작의 특별한 미덕이라 말하긴 어렵다. 당연히 그걸 기대하고 보지는 않았다만…

그런데 어떤 영화는 단 한 장면만으로도 위대해진다. <세계의 주인>이 꼭 그렇다. 작품의 소재 자체가 중대한 스포일러이기에 자세한 내용을 언급할 수는 없겠으나 감정적 측면과 기술적 측면 모두에서 단 하나도 덜어내거나 더할 것 없는 완벽한 장면. 왜 그들을 그 공간에 데려다 놓아야 했는지 뻔히 예상이 감에도 공간이 자아내는 심상이 지나치게 완벽해서 그 선택을 긍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내내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서 절묘한 항상성을 유지하던 영화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는 듯한 뜨거움을 선택하며 울분을 토해내는 바로 그 순간.

극장에서 이 정도 수준의 강렬한 체험을 한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 올해 최고작으로 꼽는 파얄 카파디아의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보면서도 이와 같은 압도적인 인상을 받지는 못했고, 아마 하마구치 류스케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라스트 씬이 견줄 수 있는 최근의 극장 경험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장면들을 마주할 때면 내가 영화 속에서 압도적인 정경을 목도하고 있음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오게 되기에 의도치 않은 소격효과가 발생하곤 한다. 여하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쇼트, 씬, 캐릭터, 영화. 올해 들어 미덕은 양 극단이 아닌 중앙 어딘가에 존재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는데, <세계의 주인>도 정말 그렇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다. 너무 절망적이지도 않고, 너무 희망적이지도 않다. 너무 이성적이지도 않고, 너무 감성적이지도 않다. 그래서 좋은 영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