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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26년 1월의 생각들"
date: "2026.02.04"
source: "na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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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년 1월의 생각들

## 법인 설립

![저때부터 학교 오래 다닐 걸 알았던 건지?!](/thoughts/media/thoughts-2026-01/image-01.png)
_저때부터 학교 오래 다닐 걸 알았던 건지?!_

‘주식회사 모노리스’라는 이름의 법인을 냈다. 모노(mono-)와 리스(lith)의 합성어로 ‘하나의 돌’이라는 뜻인데,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등장해 유명해진 단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엄청나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 하는 사업의 비전과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모노리스의 역할이 중첩된다 싶어서 이름을 지었다. 영화에서 모노리스는 커다란 비석의 모양을 띄지만 사실 돌덩이가 아니며, 인류가 일대 변혁을 맞고 진화를 할 수 있게끔 돕도록 프로그래밍된 고차원의 존재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모노리스가 맡은 역할이야말로 내가 그리고 나의 팀과 회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느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변혁적인 발명일 AI(AGI)의 앞에서 다음 세대의 ‘일’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 이로 말미암아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충격파를 최대한 줄이는 것. 내가 봐도 자의식 과잉처럼 들린다만 세상을 통째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의식 과잉인 사람들이 세상에 생채기라도 내는 법이다. 물론 저리 원대한 목표까지 갈 길도 한참 멀고, 논리적 비약이 분명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당장 다음 달에 뭐 할지도 깜깜하지만 - Thesis에 대한 확신은 200%다. 취업의 개념이 소멸할 것이고, 그 후에는 기업의 개념이 (거의) 소멸할 것이고, 그 후에는 자본주의가 높은 확률로 소멸할 것이다. 데미스 하사비스가 예고한 타임라인 내에 AGI가 도달한다면 이 모든 게 내 삶의 시간에 도래할 것임은 확실하다. 일론 머스크 말마따나 대풍요의 시대가 올지는 모르겠다만 설령 그러한 시대가 온다 한들 인류가 전례 없는 정체성 혼란과 실존적 위기에 직면할 것임은 자명해서, 이걸 해결하는 것은 내 생각에 인류를 영원히 살게 하는 것 다음으로 범지구적으로 가장 가치 있는 일 중 하나다.

개인사업자를 먼저 세우고 투자를 받을 때가 되어서야 법인으로 전환하는 케이스가 국내의 스타트업 씬에서는 일반적이라지만 전환 시 5년간 법인세 50% 감면이라는 미친 세액감면 혜택을 받지 못할 확률이 높아 아싸리 법인을 세웠다. 정부지원사업의 특성상 법인을 늦게 세우는 것이 웬만해서는 유리하고, 법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거대한 무게감과 책임감 탓에 모종의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리스크는 과대평가되어 있을 확률이 높고, 무엇보다 ‘정주영 회장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라는 사고실험을 해보았을 때 재지 않고 법인 세우셨을 것 같아서 법인을 바로 설립했다.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많고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주간계약서와 정관 등을 작성할 때 변호사 자문을 받았는데, 손을 덜덜 떨며 수임료를 내고서야 로스쿨이 왜 이리도 사랑받는 진로인가를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회사의 생일이 12월 29일로 1년의 말일과 아주 가깝다. 25년 초에 당근 다닐 적 아웃백에서 팀원들과 점심 식사를 하며 새해 목표 1번이 올해 안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실질적 의미는 없지만 아슬아슬하게 목표를 지켰다. 잠깐 N 회로를 돌려보자면, 회사가 커지고 시스템이 생긴 후 12월 29일(혹은 그로부터 가장 가까운 이전 출근일)에 창립기념일을 명목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12월 30일과 12월 31일을 휴일로 지정한다면 그림이 참 예쁠 것 같다. 12월 29일이 어떤 요일이냐와 무관하게 최소 3일, 최대 5일의 연휴가 보장되는 방식이기에 일관적이라 더욱 마음에 든다. 사회가 멱살 잡고 강제하는 연말의 해이함은 불가피하기도 하고, 지난 한 해의 돌아봄과 다음 한 해의 내다봄은 일을 잘 하고 삶을 잘 사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에 연말은 적당히 숨 고르는 편이 아무래도 이롭다고 보는데, 이렇게 명분이 생기니까 좋다.

## 흑백요리사 2

![](/thoughts/media/thoughts-2026-01/image-02.png)

올 연말연시의 내 삶을 정의했던 키워드 중 흑백요리사 2를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가 없다. 요리 프로그램 GOAT는 당연한 거고 내 인생에서 이것보다 재미있게 / 깊이 몰입해서 본 TV 쇼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후보로는 무한도전, 더지니어스 그랜드 파이널, 하트시그널 시즌2 정도가 있을 텐데, 지금 당장 1위를 꼽아야 한다면 흑백을 선택하겠다. 시즌 1과 비교하자면, 나를 포함하여 시즌 2가 시즌 1보다 잘 만든 시리즈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것 같다. 팀전의 포맷을 변경하고 레스토랑 미션 대신 극적인 1:1 대결을 추가하는 등의 변화도 제대로 먹혔지만 내 생각에 이건 무엇보다 캐릭터 덕에 거둔 영리한 승리다.

시즌 2를 보고 있자면 비단 요리라는 좁은 영역을 상정하지 않더라도 인생 전체에 걸친 존경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순간들이 꽤나 있었다. 당황하는 것이 아닌 솔루션을 찾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말하는 손종원 셰프의 리더십과 댕근으로 댕근을 맨들어버리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함을 증명하는 후덕죽 셰프의 열린 태도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먹을 사람을 진짜 행복하게 하는 마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선재스님의 말씀을 듣고 비록 방구석 요리사지만 요리를 굉장히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요리할 때의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한편 그들의 반대편에 요리괴물이 있었기에 이 시리즈가 걸작이 될 수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현도야 나 일 줘야돼’는 좀 꼴 보기 싫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왜 욕을 먹는지 잘 모르겠고, 설령 욕먹을 짓이라 한들 요리괴물이 없었으면 시즌 2가 얼마나 밍숭맹숭했을지를 생각해 본다면 참작의 여지가 있다.

물론 뭐니뭐니해도 시즌 2 최고의 캐릭터는 역설적이게도 100명의 셰프를 통틀어 가장 이미지가 많이 소비된 최강록이었다. 내 생각에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반전 매력'을 지니는데, 그러니까 본업에서의 전문성 뒤에 숨겨진 친근감과 휴머니즘을 지니거나 혹은 그 반대이다. 생각해 보면 흑백요리사 시즌 1의 심사위원인 안성재와 백종원이 사랑받은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안성재에게는 미슐랭 3스타 셰프의 권위와 딸에게 혼나며 두쫀쿠 만드는 아버지의 이미지가 공존하고, 백종원에게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의 인상과 눈을 가리고도 온 세상 식재료를 알아맞히는 미식가의 이미지가 공존한다. 마셰코 시절 최강록이 사랑받은 이유도 정확히 동일하다. '근데 이제 바질을 곁들인', '안창살 김하나' 등 일견 눌변으로 보이는 특유의 말씨에서 기인한 주옥같은 명언들을 남기는 한편 강레오의 지속적 야림을 자아내는 완벽한 조림 요리를 내보이는 실력을 선보이니...

시즌 2의 결승전 이전까지 흑백요리사 시리즈에서 그의 캐릭터는 사실 마셰코에서 구축한 이미지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무 조림, 굴 조림, 민물장어 조림, 대파 조림, 다시마 조림까지 오만가지 재료를 졸이며 심사위원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동시에 '나야 들기름', '전 아빠지만', '...을!' 등의 명대사를 남기며 정확히 그간 사랑받던 방식으로 사랑받아왔다. 그러나 그가 결승전에서 보여준 스토리텔링에는 말하자면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종류의 멋짐과 감동이 있었다. 이 또한 그가 선보인 새로운 종류의 반전인데, 애초에 청산유수로 말을 잘하는 이미지였다면 이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겼을 리 없기 때문이다. 결승에 와서야 그간의 '척하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조림 요리가 아닌 국물 요리를 택하며, 빨간 뚜껑 소주를 페어링하며 요리의 메시지를 개인으로부터 요리사 집단, 나아가 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회인 전체로 확장하는 그의 이야기, 특히 꾹꾹 눌러 담은 솔직함에 감동받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 같지만 개인적으로 결승전에서 최강록 아저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상하게 동질감을 많이 느꼈다. 보편적인 이야기의 내용에도 공감이 갔지만 그보다 나의 동질감의 포인트는 메타적인 차원에서 그의 달변이었다. 대화의 속도를 생각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진다는 점에서, 그리고 대놓고 판을 깔아주고 충분한 시간을 준다면 outperform할 역량을 지녔다는 점에서 나는 그와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러니까 글은 애초에 말을 내뱉고 고치고 때로는 온전히 주워 담으며 겨우 한 문장을 써 내려가는 과정인지라 구조적으로 눌변과 다름없기에 피드백과 끼어들기가 전제되지 않는 준비된 상황에서의 긴 말은 필연적으로 글에 가까워진다. 예상하건대 최강록 아저씨 또한 주워 담을 수 있기에 글이 말보다 훨씬 편한 사람일 것이고, 머릿속에서 정보를 인출하는 과정에 시간이 꽤나 걸리는 사람일 것이다.

최강록 아저씨가 흑백요리사 시즌 2 종영 후 안성재 셰프 유튜브에 나와서 한 말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샀으니 "생각의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 시대가 된 것 같다"라는 논지의 이야기였다. 절반만 공감하는데, 애초에 사회가 생각의 시간을 기다려준 적이 있었나 싶다. 그가 나보다 한참 더 살았으니 뭐라도 더 많은 것을 봤을 테고 그래서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하여간 나는 어릴 때부터 사회가 보편적으로 요구하는 대화의 속도 때문에 힘들었다. 최선은 생각의 속도가 대화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이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미완의 말을 내뱉는 것보다는 재미없고 과묵한 사람이라는 비판(MBTI의 등장 이후 그나마 상황이 나아졌다)에 상처받는 편이 낫다고 봤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나는 아직까지도 유전적 본능을 거스르지 못한 유약한 사람인 탓인지 사랑받음에 집착하는데 그래서인지 최강록에게 쏟아지는 무수한 사랑과 공감에 묘한 위안을 느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조금 더 친사회적이고 마음을 쉬이 여는 사람이었으면 해결될 문제였겠지만 노력을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이번 생에는 BCI 개발 전까지 쉽지 않을 테니 말의 느림과 부재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 자기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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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회고를 하면서 문득 나 자신이 지나친 오만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입학 이후 인생에서 변변히 이룬 것도 없는 주제에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비판적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지는 뭐 된다고 이리도 싫어하는 게 많나, 내가 싫어하는 냉소적인 부류의 사람들과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담긴 생각을 덜어내고 글밥만 보더라도 일단 너무 길고, 쓸데없는 수사적 군더더기가 지나치게 많고, 지적 허영도 그득그득 묻어난다는 생각을 불과 몇 달 전 썼던 글을 보면서도 했다. 모든 어젠다는 스펙트럼 위에서 trade-off 관계에 놓이고, 그래서 강한 주관과 오만은 한 끗 차이인데 요새 들어 무게추가 오만 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것이 아닌가, 하는 직감이 들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그러니까 이건 두 개의 다른 문제로 분리할 수 있는데, 하나는 주장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표현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단 당장 드는 생각으로는 주장은 주관에 가까웠던 반면 표현은 오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학 교육은 무의미하고 네트워킹이 본업인 창업가들은 짜치고 인간관계는 차갑고 이런 말들을 내뱉는 건 여전히 오만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남 눈치 보아가며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야말로 무뎌지는 과정이다. 여기에 선민의식, 우월감, 홍대병 같은 것들이 내포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든) 애초에 창업하는 사람이면 다들 '나는 남들과 다르다'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 똑똑하다' 류의 좋게 말하면 자신감 내지는 나쁘게 말하면 특권의식 같은 것이 다들 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글의 모양새는 정말로 못 봐주겠다. 그런 글로 어쭙잖은 사람들이야 현혹시킬 수 있겠지만 '진짜'들은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은 그걸 보며 코웃음친다. 예를 들어 대학 교육에 회의감이 들었다면 피터 틸처럼 '틸 펠로우십'을 만들어 실행으로 옮기든가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말만 쓸데없이 번지르르해 사유의 앙상함을 덮었다. 돌이켜보면 이건 전부 인정욕구의 발로다. 작년에 창업이라는 인생의 행로가 수반하는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는 인정욕구의 부재라는 논지의 글을 썼던 게 기억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는 친구들, 주변 지인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은 물론 가족과 심지어는 나까지 창업을 하지 않고 번듯한 회사에 취직했을 때 대비 자기 자신을 열등한 버전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글에서라도 똑똑해 보이고 싶었나 보다. 똑똑함은 어차피 사후 측정되는 팩터라 똑똑해 보임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작년에 깨달았음에도 이를 아직까지 체화하지는 못해, 책 좀 읽은 티 나는 단어를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각종 구조화된 프레임워크를 차용하며, 은근한 자기 자랑을 유머와 뒤섞어 전시하지 않았나 싶다. 이 문단을 쓰면서도 내가 이렇게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메타인지 능력을 지닌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해, 말하자면 '자기반성을 할 줄 아는 나'에 취해 끄적거리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쉬운 글만 쓰겠다, 이런 의미는 아니다. 왜인지 모르겠으나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모든 글은 쉬워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못 쓴 글이다'라고 오해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생각에 애초에 그 명제는 반지성주의의 일환이고 틀린 얘기다. 모든 글의 독자가 범대중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누구를 독자로 상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글의 난도(진입장벽)와 표현의 효율성 및 적확성 사이에는 Trade-off가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랬을 때 보편적으로 후자를 고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런 연유로 글을 너무 있어 보이게 쓰려 한다는 자체적인 혹은 외부의 피드백이 주어졌을 때 이동진 평론가의 명징 직조 논란을 떠올리며 앞서 이야기했듯 효율성과 적확성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단어라며 셀프 가스라이팅을 해왔건만 해가 넘어가고 돌아보니 아무래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분명 몇몇 표현들은 생경함에도 필요하긴 했지만, 솔직히 대다수는 상기한 것처럼 그냥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 선택한 표현들이었다. 사유를 음미하기 어려운 글을 써야지, 사유는 뭣도 없는데 포장지를 뜯기 어려운 글을 써서는 안 된다.

여하튼 작년에 쓴 글들을 보면 많이 부끄럽고 반성을 하게 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기 자신의 과거가 걷잡을 수 없이 부끄러워지는 시점이 온다. 어언 서른이 코앞임에도 여전히 과거의 나와 나의 언행이 부끄럽기 그지없는데 창업에 발 들이기 전까지 소위 '부끄러움의 업데이트 주기'가 대략 2-3년 정도였다. 그러니까 2-3년 전에 썼던 글, 썸녀에게 보냈던 카톡 이런 걸 보면 걷잡을 수 없이 부끄러워지고 이때 왜 이랬나 싶어지는데, 1년 전 정도는 지금의 나와의 차이점 정도야 느껴진다지만 민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주기가 단축되었다는 건 성장 기울기가 가팔라졌다는 뜻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기분이 좋은 포인트다.

## 기타 짧은 생각들

위의 자기반성과 같은 맥락에서 내가 지닌 굉장히 잘못된 습관 중 하나는 쓸데없이 글을 길게 쓴다는 것이다. 글을 쓰다 보면 항상 멋져 보인다거나 그냥 말하고 싶다거나 등의 이유로 빼도 좋지만 쓰고 싶은 문장들이 뇌리에 남을 때가 많은데 이러한 문장을 쓰는 걸 잘 못 참는다. 더군다나 이게 글재주와 동의어는 절대 아니긴 한데 책을 많이 읽은 덕인지 문장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타고나 원하면 글이 후루룩 나오니까 더더욱 길어진다. 그래서 애초에 짧은 생각을 억지로 늘리지 말기로 마음먹었고 대신 기록이 주는 가치는 여전하니 짧게라도 쓰자,라는 식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 이제 ChatGPT는 코딩을 제외한 일상적 목적에서는 Gemini / Claude 대비 정말이지 '열등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았나 싶다. 새해 되자마자 바로 구독을 해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경쟁 서비스 대비 이용자 수가 압도적인 걸 보면 B2C에서의 선점 효과란 이리도 무서운 것인가 싶기도 하고. 아직까지 ChatGPT가 가지는 경쟁우위가 있다면 최신의 정보를 찾아내는 검색엔진으로서의 역량이다. 그나마 Claude가 낫고 Gemini는 딥 리서치를 돌리지 않는 이상 최신 정보를 찾아내는 것에 있어 젬병인데, 검색과 관련해서는 우주 1짱인 구글의 Gemini가 이걸 왜 못할까, 그냥 Perplexity 수준으로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하며 생각을 곱씹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설마 일부러?

  Gemini는 명백히 구글의 미래 먹거리지만 아직까지는 1년에 수십 조를 까먹는 사업이고, 이걸 감당할 수 있는 건 구글이 검색 광고로만 1년에 수백 조를 벌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임의의 최신 정보 쿼리가 Gemini에서 실행되었을 때 결과가 잘 나오면 사용자 경험이야 월등하겠지만 Gemini 쿼리 비용 + Google 검색광고 수익의 기회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Gemini에서 최신 정보 쿼리의 검색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을 때 ChatGPT, Claude, 혹은 Bing 등 '구글 외부의 다른 쿼리 수단'을 사용하거나 아예 검색을 하지 않을 이탈의 가능성을 x라 하면 결국 (Gemini 1회 쿼리 비용) + (1-x) * (구글 검색 평균 CPC) * (구글 검색 평균 클릭률) 을 버는 것이 Gemini에서의 사용자 경험을 증대시켜 잠재적 LTV를 끌어올리는 것에 비해 남는 장사라고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대학이 가르치는 학문의 총량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학문의 총량보다 크다. 이 대소 관계는 아마 2000년대에도 똑같긴 했을 텐데 갭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 사업을 하다 보니 정직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짓말을 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유혹이 들 때가 있다. 돌아보면 때때로 정직하지 않았던 적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어떤 상황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대포장과는 다르다. 인간 두뇌 리소스의 한계로 인해 소수를 깊게 속이거나 다수를 얕게 속이는 건 가능하겠지만 다수를 깊게 속일 수는 없다. 구멍가게도 아니고 어차피 다수를 상대로 사업할 거 아닌가? 성자가 될 필요까진 없겠지만 최소한 나 자신에 떳떳할 수 있을 정도로는 정직해지자.

- 새해 들어 도파민 및 감정 컨트롤이 미흡했던 것 같아 정신 상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출처를 하나씩 끊고 있다. 작년에는 인스타만 끊었었는데, 그것이 주는 가치에 비해 FOMO로 인한 불안이 큰 것 같아 링크드인을 끊었고, 다음으로는 블로그에 자꾸 들락날락하며 지인들의 소식을 찾아 헤매는 나를 발견하게 되어 네이버 블로그 앱을 지웠다.

  이 과정에서 세상만사 다 그렇다지만 내가 인식하는 도파민의 레벨이 대단히 상대적임을 깨달았다. 인스타를 삭제하니 링크드인이 인스타만큼 재미있고, 링크드인을 안 보니 블로그가 링크드인만큼 재미있고 하는 식. 이론적으로 하등 쓸모없는 도파민 트리거들을 하나씩 제거하다 보면 일에의 몰입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새해 들어 해이해진 독서 루틴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유튜브는 도저히 못 끊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