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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21세기 시지프스
01
대학 생활에서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퇴다. 대학이 다닐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의, 어떤 학회에 들어가야 하는가, 학점과 연애 중 무엇이 중요한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 우선 대답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니체가 주장했듯이 철학자가 존경받으려면 마땅히 자신의 주장을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대답에 결정적인 행동이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패러디)
02
B2C 제품/서비스의 객단가에는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는데,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단위 시간 내 개인이 벌 수 있는 돈에 한계가 있고 B2C 사업을 극소수의 예외를 상대로 진행하는 것은 성공 확률이 대단히 낮은 탓이다.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는 수많은 서비스와 제품을 떠올려보자. 가령 가장 기본적인 의(衣)와 식(食)에의 욕구를 채워주는 옷가지와 식료품은 대개 수천 원에서 수만 원 수준이고, 매우 드문 예외를 제외하면 비싸봐야 수십만 원이다. 인기 있는 구독형 서비스를 떠올려 보자면 ChatGPT,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스포티파이 등의 기본 요금제는 전부 한 달에 1-2만 원 수준이니 1년으로 환산하면 십수만 원 수준이다. 쿠팡, 배민과 같이 부재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들조차 연간 객단가 백만 원을 넘지 못한다.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와 가전제품 쪽으로 가면 그제야 수백만 원단위의 돈을 지불하는 제품이 등장한다.
하물며 백만 원단위 제품/서비스도 이리 드물거늘 천만 원단위를 넘어가는 B2C 프로덕트가 얼마나 있겠는가? 세상 모든 제품/서비스를 알 수 없다는 한계를 감안해야 하겠지만 얼마간의 보편성을 확보한 B2C 프로덕트로는 4개가 전부다. 그중 3가지는 리서치를 하지 않아도 수월하게 떠올릴 수 있으니 1)주택, 2)럭셔리, 3)자동차가 그것이다. 나머지 한 가지 카테고리는 쉬이 생각하기 어려운데 바로 4)대학 교육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의대를 제외할 시 1년 등록금이 천만 원을 상회하는 대학이 국내에는 거의 없긴 하나, 해외로 눈을 돌리면 이름 좀 들어봤다 하는 명문대들은 최소 5천 부르고 시작한다. 하버드와 스탠포드는 연 6-7천만 원, MIT와 프린스턴은 1억을 호가한다. 천만 원의 자의적 기준을 차치하고 보더라도 대학 교육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네 종류의 B2C 프로덕트 중 하나라는 사실에는 틀림이 없다. 우주여행 티켓, 최고급 가구, 50년 묵은 위스키 따위는 지나치게 특수하니 제외.
네 가지의 제품/서비스가 괜히 비쌀 리 없으니 이들이 전부 여러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복무하는 탓이다. 공통적으로 1)본질적 차원의 목적과 2)과시와 증명 차원의 목적이 내재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2)의 목적이 더해질수록 가격은 끝도 없이 상승한다.
주택
본질적 차원 : 주택의 본질 중 제일이 안전임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것이며, 그 외에 심리적 안정감, 심미성, 휴식 및 재충전, 쾌적함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서울에서 가장 저렴한 아파트(실은 오피스텔이라 불리어 마땅하다)는 화곡동에 있는 6평짜리 집으로 7,000만 원 선에 거래된 바 있다. 본질적 차원의 욕구의 해결 수단을 가장 값싸게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직장인의 일 년 연봉은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가장 비싼 B2C 재화임에 틀림없고, 그래서 임대의 형태가 일반적이다.
과시/증명 차원 : 누군가는 본질이라고 볼 수 있을 심미성, 쾌적함, 안전, 이동의 용이함, 이웃과 주변 환경의 퀄리티 등을 높이기 위해 사람들은 적게는 수 억에서 많게는 수십억, 수백억을 지출한다. 상기한 요소들의 총합이 과시와 증명의 차원으로 귀결되는데, 다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집값-효용 그래프의 개형은 로그함수의 모양을 띌 것이다.
럭셔리
본질적 차원 : 보잘것없다. 짐을 들기 위한 목적(가방), 시간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시계), 추위를 피하기 위한 목적(코트)에 수만 원 이상의 돈을 낼 필요는 전무하다.
과시/증명 차원 : 상기했듯 럭셔리 제품의 본질은 과시이며 사전적 의미가 그러하다. 특히 목걸이, 팔찌, 귀걸이 등의 경우 본질적 목적이 과시인지라 1)과 2)의 두 차원이 중첩되어 본질적 차원이 소멸한다. 본질적 목적이 일부 존재한다 한들 해당 목적이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도 채 되지 않는다.
자동차
본질적 차원 : 1)정확하게(정류장 내지는 역의 개념 없이) 2)빠른 속도로 3)안전하고 4)프라이빗하게 이동하는 것이 자동차의 본질이다. 안전을 일부 포기할 때의 대체재(오토바이)와 속도까지 추가로 포기할 때의 대체재(자전거)가 있긴 하겠으나, 네 가지를 동시에 챙기고자 한다면 가장 값싼 차인 기아 모닝에도 1,000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과시/증명 차원 : 테슬라를 타는 것, 페라리를 타는 것, 벤츠를 타는 것, 롤스로이스를 타는 것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의 취향과 지위를 드러낸다. 럭셔리와 비슷하게 다양한 방향성과 다양한 '비쌈'이 있는데, 럭셔리 요소가 추가될수록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비싸져 가장 싼 차의 100배를 쉬이 넘는다.
가격의 측면에서 대학이 주택, 럭셔리, 자동차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초고가의 소비재임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다.
03
대학 교육에 대해 동일한 프레임워크를 적용해 보기 위해서는 대학이 나고 자란 역사를 훑을 필요가 있다. 최초의 대학으로 알려진 볼로냐 대학은 11세기 말엽에 설립되었는데, 당시 학생들이 길드의 형태로 대학을 설립한 본래의 목적은 명백히 실용적인 전문지식의 전달과 자격의 부여였다. 중세 유럽의 사회 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며 더 많은 성직자, 더 많은 법관,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볼로냐 대학에는 신학, 법학, 의학 3개의 학부가 자리 잡았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다변화함에 따라 대학 학제의 커버리지는 넓어졌으나 본질적 목적은 변함없었으며 이는 (특히 전문적인 직업을 갖는 데 요구되는) 지식과 경험의 희소성을 전제한다.
대학에 과시와 증명의 레이어가 덧씌워진 것은 16-17세기의 일로 알려져 있다. 선발대는 옥스포드와 케임브릿지였는데, 봉건 귀족의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지배계급인 '젠트리(gentry)'가 부상함에 따라 대학은 상류층 네트워크에 참여하여 교양과 매너를 배우고 좋은 가문의 자제임을 증명하는 기능을 얻게 되었다. 최초에는 목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되었던 하버드, 예일 등 미국의 아이비리그 학교들 또한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산업화 시대의 신흥 부호들과 결탁하고 WASP 엘리트의 요람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대열에 동참했다. 프랑스 혁명과 남북전쟁, 무엇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며 공식적인 신분제는 절대다수의 국가에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계급의 빈자리를 능력이 대체하며 대학은 자연히 지능과 끈기에 상응하는 새로운 사회적 지위를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이형의 공신력을 얻게 되었다.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학생이라는 프로필에는 단순히 서울대 컴퓨터공학부에서 들을 수 있는 양질의 강의,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퀄리티 이상의 무언가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하여 옥스브릿지의 귀족화를 기점으로 지금까지 수 세기 간 대학의 역사는 지식 전달의 기능과 사회적 지위 부여의 기능이 끊임없는 사회 구조의 일대 변혁에도 불구 절묘한 균형을 맞추어 온 과정과 다름없다. 그러나 근래 들어 양자 간 균형이 무너지고 있음을 목격하게 되는데 의대, 간호대, 일부 공과대학 전공을 제외하면 학부에서 수학하는 내용의 대부분을 대학의 울타리 바깥에서도 배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식의 민주화 과정은 인터넷에 의해 1차로, LLM에 의해 2차로 진행되었다. www 모멘트 이후로 절대다수 지식의 값어치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ChatGPT 모멘트에 힘입어 땅바닥에 떨어진 지식을 정제되지 않은 자연어만으로 주울 수 있게 되었다. 이미 곪을 대로 곪아 있던 문제를 ChatGPT가 제대로 터뜨린 셈이다.
이로써 본질적 목적이 거진 탈각되어 버린 대학은 주택/자동차보다 럭셔리에 가까워졌다. 거칠게 말하자면 극소수 전공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1년에 샤넬백 하나씩을 입학처에 갖다 바치면서 대가로 가짜 배움을 수취하는 사기극의 피해자다. 다만 이는 대학 교육이 전적으로 무용함을 지적하기 위함이 아님에 주의해야 하는데, 그보다 ROI와 기회비용의 렌즈를 끼고 바라보고자 함이다. 대학 교육은 무(無)의 가능세계에 비해 우월함이 자명하나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세계는 그뿐만이 아니며 따라서 들인 시간과 노력 비용에 비해 얻어 가는 것이 적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보험에 가까운 자그마한 효용을 얻고자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은 시간을 확인하고자 파텍 필립 시계를 구매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파텍 필립의 경우 장인 정신과 신화로서 가격을 정당화하나 대학 교육의 경우 지식을 독점한다는 구닥다리 약속을 팔기에 정당화할 방도가 없다는 점이겠다.
04
물론 본질적 차원과 과시/증명의 차원 간 밸런스는 결코 필수불가결하지 않아서 럭셔리 제품이 그러하듯 단일하고 강력한 목적만으로도 개인에게서 수천만 원을 수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은 절반이 불구가 된 상태로도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그럴 리 만무한데, (럭셔리 제품과 달리) 시간과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과시/증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결정적인 취약점이다. 간단한 사고실험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한 두 명을 상상해 보자. 한 명은 '연세대 인문대 학부 졸업자'이고, 다른 한 명은 '연세대 인문대 학부 자퇴생'이라고 했을 때, 대단히 고리타분한 사람이 아니라면 둘 사이에 지능 및 역량의 차이가 존재하리라 생각할 리 없을 것이다. 오히려 자퇴생이 졸업자보다 뛰어난 판단력을 지녔으리라고 추측할 수는 있겠다. 대기업에서 졸업장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이 더 많은 지혜와 더 우수한 역량과 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길 기대해서라기보다는 단지 자퇴를 할 만한 캐릭터를 지닌 사람이 톱니바퀴로서 조직에 몸 담는 상황을 꺼리는 탓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지구상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한 명인 피터 틸은 어찌나 영민한지 이와 같은 딜레마를 십수 년 전에 진즉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기성 언론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던) '틸 펠로우십(Thiel Fellowship)'을 시작했는데, 대학을 자퇴한 창업가에게 2년 동안 20만 달러를 지급하는 제도로, 대표적인 수혜자로는 비탈릭 부테린과 에반 슈피겔이 있다. 그의 아이디어였을지는 모르겠다만 최근 팔란티어에서 SAT 점수가 높은 고졸자를 채용하기 시작한 것도 이와 유관한 맥락이다. 비단 팔란티어만의 독창적 관점은 아닌 것이, 토스와 당근 역시 (팔란티어처럼 대대적이지는 않으나) 고졸자를 채용한 바 있으며, Y Combinator 최근 배치를 보면 학생 창업이면서 dropout 하지 않은 케이스가 드물 정도다.
05
다시 대학의 두 가지 목적으로 돌아가자. 일부 전공을 제외하면 희소한 지식을 전달하는 본질적 목적은 대학원 또는 ChatGPT로 양분하여 이관되었고, 지능과 끈기의 증빙 자료로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과시/증명의 목적은 구태여 학부를 졸업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4년의 학부 과정은 진공 상태에 놓인 채로 그나마 유일하게 지니는 취업 사관학교로서의 효용을 유지하고자 하나 실질적으로 취업에 필요한 내용을 가르치지 않으며 학습을 오롯이 취업 준비생의 몫으로 전가하기에 어정쩡하게 굴러가고 있다. 중용이 만사에서 최선이라는 경구도 작금의 대학 교육에는 해당하지 않는 듯 보이는데, 명백한 우월전략은 양 극단(자퇴와 대학원 졸업)에 존재하는 탓이다.
반복하건대 학부 과정이 전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주장하고자 함은 아니며 현행 커리큘럼에도 나름의 장점이 존재함은 자명하다. 개인적으로도 컴퓨터 프로그래밍, 논리설계와 같은 수업을 들은 덕택에 개발자로 살지 않았음에도 순도 100%의 바이브 코더들이 갖추지 못한 소양을 갖출 수 있었으며, Greedy Algorithm과 Abstraction 등의 개념은 인문학적으로 재해석해서 삶을 설계하는 데에 적용하고 있다. 그러나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했을 때, 이것이 그야말로 정신 나간 구조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1개의 학점을 이수하기 위해 순수하게 수업을 듣는 시간으로만 10-15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과제를 하거나 시험 공부를 하는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30-40시간은 우습게 들 것이다. 졸업에 필요한 학점이 대략 130학점 정도임을 고려하면, 졸업장을 위한 눈먼 레이스에 4-5천 시간을 바치는 셈이다. 심지어 시간당 수천 원을 내야 한다! 대학에서만 얻을 수 있는 네트워크야 대체 불가능하다지만 구태여 교육 기관의 형태를 띠어 학생들을 모아야 함에 합당한 근거는 부재한다. "그렇게 배워두면 어디선가 쓸 데가 있겠지"라는 구태의연한 방어기제 또한 일견 일리 있어 보이나 확률론적 접근이 배제되었기에 무의미하며 무책임하다.
결국 학부 과정의 효용은 예나 지금이나 직업 활동에 필요한 전문 지식의 전달이거늘 소수의 학자를 양성하던 기관이 대다수의 직업인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변모하는 과정에 적절히 탈바꿈하지 못한 탓에 온갖 문제가 불거지는 셈이다. 예컨대 11세기 볼로냐 대학교에서 신학 학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졸업생 A는 세계 최고의 신학자 중 한 명이었을 텐데, 실무를 접하지 않은 채 SKY 경영대를 졸업한 졸업생 B는 제아무리 마케팅 관리 수업에서 A+을 받았다 한들 1년간 메타 광고 캠페인을 직접 세팅하고 최적화해본 고졸 마케터보다 당장의 역량에서 열등하다. 쓸데없이 비싼 취업 사관학교는 정작 어떤 일이 적성에 맞을지에 대해 키자니아 수준의 힌트조차 주지 못하고 있다. 1)이 정도로 높은 비율의 사람들이 2)이 정도로 비싼 돈을 내며 3)이 정도로 긴 기간 학부 과정을 거침은 그야말로 현대 사회가 지니는 가장 거대한 비효율이고 부조리다. 교수님들의 밥그릇 싸움, 대기업이 원하는 인재상, 순응적일수록 좋은 대학에 가기 쉬운 교육의 구조, 인간 본연의 관성 등이 기묘하게 맞물린 결과다.
예상컨대 AI의 파도가 대학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인터넷의 파도보다 클 것이다. 이는 지식의 접근성 향상에는 인터넷과 AI 모두가 각각의 상이한 방법론으로 유의미하게 기여했던 반면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취업 시장 사이즈의 변화에 대해서라면 AI가 미칠 변화가 인터넷이 미친 변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급진적인 탓이다. 다시 말해 AI는 대학의 마지막 남은 효용인 취업 사관학교로서의 기능을 대폭 축소시킬 수 있으며 이것은 대단히 확률 높은 미래다. 다만 사무직 및 지식 노동자의 대체에 필요한 LLM의 성능은 학자와 연구자의 대체에 필요한 LLM의 성능보다 현저히 낮음이 자명하기에 대학원 진학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효용이야 유효하겠다만 이를 위해 4년과 수천만 원을 소모하는 것은 역시나 사치다.
ChatGPT의 등장은 (ChatGPT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도 응당 물었어야 할) 대학 교육의 근본적 맹점에 대한 질문의 시기를 앞당겼다: 4년의 시간과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의 돈을 투자해 얻은 졸업장의 ROI는 적절한 수준인가? 대학이 부재한다면 개인의 지능과 역량을 증명할 대체 수단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AI가 지식의 습득과 지식 노동자의 실직을 전례 없이 쉽게 만들 미래에 인간에게 필요한 교양과 고등 교육은 무엇인가? 분명 자퇴의 선택지가 모두에게 열려있는 그리고 권장되는 길이 될 수 없음을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고작 사회적 안전망 따위에 몰상식한 수준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관해 이성적 개인이라면 진지하게 자문해 보아야 할 시점이 도착했다. 내 생각에 자퇴는 리스크와 관성의 빈 껍데기를 분리하여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대학생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다.
1) 아직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에게 이런 투의 이야기를 하면 '당신이 이미 졸업했기에 할 수 있는 말이다'라는 투의 공감 불가능성을 지적하는 답을 듣곤 하는데 외려 졸업한 사람이기에 힘이 실리는 종류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자퇴한 사람이 동일하게 말하면 자기 합리화로 비치기 십상이니...
2) 논의를 조금 더 확장한다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판이 가능하기에 소위 '사회적 의무교육'의 바운더리를 어디에 형성해야 하냐의 문제로 환원되나 이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며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지만 수능을 포함한 구조적 일대 변혁을 필요로 하기에 우선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