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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26년 4월의 생각들
사업 이야기
소위 사업이라 칭할 만한 것을 시작한 지 꼭 1년이 되는 달에 큰 변화가 여럿 있었다. 관리하던 크리에이터의 이탈 신호로 말미암아 비즈니스 모델을 재고하게 되었고, 이것이 근본적 원인은 아니었으나 여하튼 이로부터 촉발된 상황에 의해 1년간 함께한 코파운더 H와 갈라서게 되었다.
MCN의 본질은 소통 대행과 편리함 증대(비타민)에 놓여있겠거니 넘겨짚었는데, 사실은 수익 증대(페인킬러)와 훨씬 밀접함을 간과했다. 그러다 보니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우리 서비스는 싸고 편리한 MCN이 아닌 영업도 못하고 커버리지만 넓은 플랫폼에 가깝게 인식되었고, 10% 수수료가 비싸게 다가옴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시장 리서치의 미진함, 지나친 플라톤주의적 구조화, 시장이 아닌 자신의 사고실험에 대한 과신 등 수많은 악덕이 중첩된 결과물.
이것이 문제의 전부였다면 BM을 재고하는 정도로 충분했겠지만, 최근 들어 '비트(Bit) 세계'와 '원자 세계'의 렌즈를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기에, AI의 발전으로 비트 세계, 즉 극히 일부를 제외한 소프트웨어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모든 개인이 자신이 사용할 소프트웨어를 셀프로 제작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는 제작할 테니 가져갈 수 있는 파이가 줄어듦은 당연하고, 복제의 코스트 또한 0에 가까워짐에 따라 절대다수의 소프트웨어는 끝내 commodity화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운영하는 사업의 본질은 순수한 소프트웨어업에 가깝다 보니 여기서 근본적인 회의가 들었고 사업의 방향성을 보다 거시적인 단에서 고민하게 되었다.
기존에 운영하던 서비스를 어찌할지에 대해서는 대강의 고민이 끝나 신뢰와 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의 안전이별 방법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공교롭게 같은 시기 새로운 기회들이 찾아와 앞으로의 방향을 그려보는 단계다. 무언가를 만들기는 전례 없이 쉬워졌어도 최소한 대학생의 입장에서 창업을 하기에는 오히려 이전보다 어려워진 시대가 아닌가 싶다. 샘 알트만은 지금의 시대를 두고 '창업하기에 가장 좋은 시대'라 말할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기에 가장 좋은 시대'라고 격하하여 말했어야 했다. 제품과 비즈니스는 더 이상 동치가 아니다.
하여간 H와의 동행을 마무리하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서로에 대해 가감 없는 피드백을 해주었는데, 별개로 자기반성을 병행하여 내가 부족했던 지점들, 보완점에 어떤 것이 있는지 늘어놓고 정리해 보았다. 물론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기질적 부족함에 가까우나 뼈저리고 고통스러운 순서대로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위임의 실패 : 토스 이승건 대표의 책상에는 '제갈량의 우를 범하지 말자'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고 한다. 제갈량은 적절히 위임을 하지 못한 탓에 과로로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다 오장원의 별이 되었는데, 이와 반대로 위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로 읽힌다. 내가 모든 것을 도맡아 사업의 한계를 내 물리적 시간에 걸어서는 절대 큰일을 이룰 수 없다. 가능성은 당위성의 충분조건이 아니고, 무용한 미련함을 철인의 책임감으로 오인해서는 안 된다. 완벽주의는 필요할 때에만!
갈등의 회피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든, 생각과 생각 사이의 갈등이든, 사업과 생각 사이의 갈등이든,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 + 매몰비용에 대한 필요 이상의 고려 + 타인에 대한 공감 등이 겹쳐 제대로 부딪치지 못했다. 갈등의 회피는 Alignment의 회피의 동의어임을 이제서야 알았다. 너무 싸워도 문제, 너무 안 싸워도 문제. 사실 아이템을 검증하던 시절부터 드러났으나 애써 무시했던 가장 값비싼 실수였다.
구체적 방향성 드라이브의 부재 : 일을 단기/중기/장기로 나누면 나는 단기와 장기에 강하다. 눈앞에 놓인 웬만한 목표가 명확한 일은 남들보다 꼼꼼하고 빠르게 잘 해내며(단기),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고 변수를 구조화하여 비전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췄다(장기). 그러나 그곳에 가닿기 위해서 지금 어떤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영 젬병이다(중기). 그러다 보니 적당한 호흡의 목표의식을 가지고 계획적으로 일을 하지 못했다.
관성을 내려놓지 못함 : 끊어야 할 것을 알면서도 관성에 지나치게 얽매여 끊음에 지나치게 큰 고통을 느낀다. 고객과의 관계에서도, 개인과 팀이 일하는 방식에서도, 사업의 진행에 있어서도 그러했다. 같은 맥락에서 AI로 비용을 절감한다는 콘셉트에만 꽂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과도한 구조적 우아함의 추구 : 예술가가 아니라 사업가이거늘 구조적 우아함을 추구하느라 프레임워크를 들이밀고 시장을 끼워 맞췄다. 그러다 보니 어떤 시그널은 과소평가되었고 어떤 노이즈는 과대평가되었다. 심지어 무지한 상태에서 사고했다는 점이 큰 죄악으로, 존 로크가 말했듯 '잘못된 전제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추론을 하겠다는 사람은 미치광이'인 탓이다.
대략의 반성을 끝내고 불현듯 엔쇼 시절 받았던 피드백이 떠올라 온갖 폴더를 뒤져 HRE 파일을 찾아냈는데, 동일한 내용이 다른 맥락에서 Paraphrasing되어 제시된 수준이라 소름 돋을 뻔했다. 3년이 흘렀는데도! 사람 생각 다 똑같고 사람 쉽게 안 변한다. 그렇지만 어떤 것은 부단히 노력하면 보완할 수 있겠다 싶고 어떤 것은 이번 생에 쉽지 않겠다 싶은데 최대한 탁월해지는 동시에 단점을 잘 가릴 수 있는 사업/사람을 찾는 것이 뻔하지만 정도겠다. 동시에 강점을 미친 듯이 갈고닦기. 샤킬 오닐은 축구를 할 필요도 3점 슛을 던질 필요도 없었고, 창업도 결국 팀플레이다.
각설하고 코파운더와의 이별은 뭐랄까, 고약한 방식으로 말하자면 20대 초 연인과의 이별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앞으로 함께할 수는 없겠으나 서로를 응원해 주는 관계로 남기를 기약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린 연인들의 약속이 결코 지켜질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코파운더 관계에서는 지켜지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무엇보다 새로운 동업자가 엑스와의 만남을 꺼리긴커녕 반기리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AI/스타트업 이야기
1-1. 나심 탈레브가 <블랙 스완>에서 제시하는 '규모가변성(scalability)'의 아이디어는 흥미롭다. 본작의 논의에서 규모가변성은 특정 직업의 소득과 시간-노동의 투입 간 비례 여부와 관계된 개념으로, 정비례하여 얻을 수 있는 소득에 한계가 있는 경우 규모불변적이며, 한계가 정해지지 않고 양자 간 관계가 예측 불가능한 경우 규모가변적이다. 가령 녹음기 발명 이전의 가수는 규모불변적 직업에 해당하나 녹음기 발명 이후의 가수는 규모가변적 직업에 해당한다.
1-2. 지금 AI를 가장 잘 쓰는 사람들은 창업가이거나 초기 스타트업의 멤버다. 엔터프라이즈 환경의 보안 제약이나 업무 시간/범위/몰입도의 차이도 한몫하겠으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인센티브 구조의 정렬 문제다. AI는 개인이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어 단위 시간 내에 수 배, 수십 배의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돕는 증폭기라서 본질적으로 규모가변적인 도구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예외 - 퀀트 트레이더, VC 심사역, 전문 펌의 파트너 등 기본급을 아득히 상회하는 캐리를 챙길 수 있는 직종 - 를 제외하면, 기업의 보상 구조는 규모불변적이다. 내가 AI를 써서 다섯 배, 열 배의 일을 한들, 그리하여 설령 다섯 배, 열 배의 비즈니스 임팩트를 낸다 한들, 내 연봉은 다섯 배, 열 배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AI 시대에는 규모가변적인 직업을 첫 커리어로 삼는 편이 낫다. 그것이야말로 AI 기술의 발전과 자기 자신의 성장 및 부의 축적 간 Alignment를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네트워크를 레버리지 삼는 규모가변적 직급에 도달할 심산으로 신입의 경우 규모불변적인 직종을 첫 커리어로 삼기엔 세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인다. 과연 그전에 해고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그럴 자신이 있는가? 애초에 현재의 고용이 활발할 수 있음은 고용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AI Adoption이 충분치 못한 탓인 마당에, 모델의 발전 및 효율화와 상충하는 Alignment 구조에 매여서는 안 된다.
물론 디자이너, 마케터, 변호사, 회계사라고 해서 꼭 규모불변적 인센티브 구조에 종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든지 규모가변적인 직업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AI로 인해 증폭된 비즈니스 임팩트의 과실을 자신이 온전히 챙겨갈 수 있어야지만 성립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실제로 요새 미국에서는 AI를 헤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전문직 종사자가 직장을 퇴사한 후 자신의 회사를 차리는 형태의 'neo-firm'이 대세다.
1-3. 그렇다면, 어차피 절대다수의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만, 호스피스 병동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고 싶다면 지금의 보상 구조에 거대한 변화를 주어야만 하지 않을까? 찰리 멍거가 훌륭히 지적했듯 비즈니스 세계는 인센티브가 전부다. 현재의 보상 구조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체계는 물리적 한계로 인해 개인 간 생산성의 편차가 그리 크지 않다는 대전제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니까 같은 기업 내 같은 연차의 직원이라면 소위 '에이스'가 '폐급'보다 두세 배는 잘할 수 있어도, 스무 배, 삼십 배 뛰어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비슷한 연봉이 주어진다.
하지만 AI가 이전에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케 만들었다. 에이스는 폐급보다 스무 배, 서른 배, 나아가 백 배 뛰어날 수 있다. 두세 배 정도야 성과급의 차이로 유야무야 넘어간다 쳐도, 스무 배 서른 배 뛰어난 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단순히 스무 배 서른 배의 연봉을 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이는 규모가변적 성과에 규모불변적 보상을 덧씌운다는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사측의 리스크와 내부의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경제학자가 아닌지라 어떠한 방향의 변화가 필요할지는 속단할 수 없으나 다음과 같은 경향성의 필요를 예측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고정급과 변동급의 비중이 역전되어야 한다. 기본급은 없어지거나 문자 그대로 '기본적인' 수준으로 하락하고 소위 캐리 혹은 커미션 구조가 전 직군으로 확산된다. AI는 개인의 비즈니스 임팩트 측정을 정교하게 만듦으로써 이와 같은 변화에 순풍을 불어줄 것이다. 이는 곧 시간이 아닌 성과에 지불하는 프로젝트/산출물 단위의 계약 그리고 스톡옵션 등 내부 equity를 이용한 보상의 보편화를 자연히 결과로서 낳는다. 그렇다면 소수의 파트너와 다수의 프리랜서가 얼기설기 엮인 구조를 과연 '회사'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한편 이러한 패러다임 시프트가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터인데,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부작용에는 양극화 문제가 있을 것이다. AI를 증폭기로 활용하여 최고의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현재의 일반 직장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부를 쌓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규모가변성은 상방과 함께 하방 또한 열어버린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기본급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개인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감소하거나, 혹은 이 논의가 보다 거시적인 국가 차원에서의 기본소득 어젠다로 환원될 수도 있다.
1-4. 정치적인 어젠다에 굳이 말을 더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면 최근 대두된 하이닉스발 성과급 분배 이슈는 AI 시대 보상 구조의 근본적 문제에 노동자들이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 격으로 도달한 결과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노동의 결과물로서 조직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노동자에게 인센티브로 환원하는 방식은 위와 같은 고민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될 지점 중 하나이다. 다만 작금의 사회적 논의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바와 완전히 상이한 맥락을 지닌 탓에 개인의 성과와 임팩트 간 Alignment의 반영이 배제되어 있다는 한계를 지닌다.
1-5. 진정한 AX는 보상 구조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의 인센티브 구조야말로 AX가 실패하는 핵심적인 원인이다.
2-1. 이제 모두가 오픈클로를 쓰고, 클로드 코드를 쓴다. 내가 클로드 코드를 일상 업무 용도로 처음 적극적으로 사용한 것이 10~11월이니, 네다섯 달의 시차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더 잘 쓴다는 확신은 있다만 적어도 좋은 도구를 채택한다고 꺼드럭댈 수 있는 시대는 한참 지났다. 머지않아 녹음기도 그렇게 될 것이다. 반대로 아직도 클로드 코드, 코덱스, 오픈클로를 안 쓰는 사람들이 뒤처진 거다. 아직도 컴퓨터에 있는 모든 파일을 일일이 single thread - 인간의 뇌 - 로만 여닫으며 전통적으로 일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도구의 활용이 조직 단위에서 어떻게 업무 효율의 향상과 비즈니스 임팩트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한참 부족하다. 이건 '슬랙봇 50개를 만들어서 일을 시켜 토스를 만들어요'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H2A(Human to Agent) 병목은 사실 클로드 코드 내지는 코덱스의 사용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쉬운 문제이지만, H2H(Human to Human) 병목은 조직 내 각 개인의 워크플로우와 암묵지 데이터가 죄다 다른 탓에 정렬 문제를 수반하므로 해결하기가 현저히 어렵다.
2-2. 최전선의 사람들은 슬슬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콴다의 이용재 대표님, Harvey의 코파운더 게이브 페레이라가 관련된 주제의 글을 써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글은 트위터의 창업자이자 Block의 CEO인 잭 도시의 <FromHierarchytoIntelligence>였다. 그는 과거 2,000년간 조직에 위계가 존속한 이유를 정보 라우팅의 물리적 한계에서 찾고, 이를 대체할 공유 지능으로서의 'AI 월드 모델'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잭 도시가 제시한 구조야말로 향후 몇 년간 AX를 시도하는 조직들이 따라야 하는 북극성이 될 것이다.
한편 이러한 글들, 특히 잭 도시의 글을 읽으면서 인문학적, 철학적 소양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낀다. 잭 도시가 로마 시대로부터 현대의 스타트업까지 조직 구조의 변화를 훌륭히 분석한 것처럼 지금의 세계관 중 무엇이 어떠한 이유로 낡았는지,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관을 어디서 어떠한 이유로 빌려와야 하는지에 대하여 머릿속 암묵지에 수많은 후보가 있어 늘어놓고 고민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3. AI의 발전으로 개인이 비스포크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최근의 흐름을 인류 문명사와 겹쳐 보게 된다. 요지는 자급자족 경제 → 시장 경제 → 구독 경제 → 다시 자급자족 경제로 돌아오는 수미상관식 회귀 구조다. 천공 카드와 어셈블리어를 사용하던 시대 최초의 소프트웨어는 모조리 자급자족이었다. 그러던 중 MS Office와 같이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개념이 등장했고, 이어 소프트웨어를 구독하는 SaaS 구조가 세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생성형 AI 덕분에 자급자족의 시대가 돌아왔다. 전문가와 인프라의 부재로 인한 최초의 불가피함이 기술 발전에 힘입어 확대된 가능성으로 치환되었다.
그렇다면 동일한 사이클이 인간이 살아가는 원자적 세계에도 찾아올 수 있을까? 수렵채집인의 자급자족 경제는 농업 혁명과 함께 분업에 기반한 시장 경제로 전환되었고, 이어 화폐와 기업이 세상을 지배하였으며, 최근 들어 우버와 위워크 등 구독 경제로의 전환이 진행되었다. 물론 소프트웨어 세계에서 다시 자급자족 구조로의 복귀가 가능했던 것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병목이 코드를 생성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밖에는 없었던 덕분이다. 반면 물리적 세계에서의 병목에는 인간의 노동 시간은 물론이고 재료와 에너지가 포함된다. 설계와 노동이야 피지컬 AI가 해결할 수 있겠지만 재료와 에너지는 그렇지 않다. 코드는 순수한 인지 능력이 개입하여 제로베이스에서 생성할 수 있지만, 철과 전기는 그러할 수 없다.
물리적 세계에서 진정한 자급자족 경제가 찾아오기까지는 한세월일 것이다. 로봇이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노동 시장이 소멸하고, 에너지가 (거의) 무한해짐으로써 자원 시장이 소멸하고, 분자 조립이 가능해짐으로써 완제품 시장이 소멸해야지만 가능할 터인데, 이건 물리법칙의 한계로 인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다. 에너지 병목이야 핵융합과 태양광 등을 엔지니어링하여 해결할 수 있는 공학의 문제라지만 분자 조립은 더 근본적인 층위에 놓인 과학의 문제다. 언젠가 닐 스티븐슨이 <DiamondAge>에서 제시한, 모든 가정이 파이프로 기본 원소를 공급받고 '물질 컴파일러'로 분자를 조립해서 사용하는 세상이 올까? 무섭지만 기대되는 세상이다.
4. 미래에셋증권에서 RA 직군 자체를 없앤단다. 내 예상보다는 한참 늦긴 했지만 올바른 흐름. 그렇다면 모델의 발전에 힘입어 그것보다 조금 더 자동화되기 쉬운 직군이 차례로 없어지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Opus 4.7이 RA를 없앴다면, Opus 5.0 혹은 그 유명한 Mythos 모델이 주니어 컨설턴트와 주니어 애널리스트를 없애지 못할 이유는 리더십의 무능과 근로기준법을 제외하고 무엇인가? 결국 이러한 소거의 릴레이는 중간 관리자를 지나 책임을 지고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 레벨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니 원자의 세계가 아닌 비트의 세계에 종속되며 책임을 질 수 없고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없는 이들의 목은 위태롭다. 한국에서 태어났음에 감사해야 할 일이다.
디스전
1. 최근에 크라이치즈버거가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클로드 코드를 잘 사용하는 F&B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글을 올린 것을 봤는데, 그 시간에 버거 맛있게 만들 궁리나 하면 좋겠다. 내 기준 버거킹, 맘스터치는커녕 롯데리아, 맥날보다도 맛이 없는데. 요새 각종 행사 및 대학교 학생회 등과 협업해서 케이터링 제공하며 스타트업 씬과 가까운 브랜딩 가져가는 건 아무쪼록 좋다는 말이다(물론 간식도 아니고 밥으로 이거 주는 행사는 아무래도 만족도가 떨어진다). 근데 이건 해도해도 너무 비본질적이지 않나? '코덱스를 한국에서 가장 잘 쓰는 뮤지션' 따위랑 내게는 대동소이하게 느껴진다. 자꾸 익명성 뒤에 숨어 여기 뒷광고하는 모 파워블로거 내지는 유튜버의 행태도 꼴보기 싫다.
2. 미친 명문 (AWS 엔지니어 김영민님)
별이 곧 가치라는 착각. Claude Code 소스코드가 설정 파일 한 줄 누락으로 유출됐다. 누군가 그걸 통째로 올렸고, 다른 누군가 밤새 다른 언어로 다시 짰고, 그 저장소는 역사상 가장 빠르게 10만 스타를 찍었다. 링크드인에서는 이걸 커리어 하이라이트로 올리고, 축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남의 택배가 잘못 왔는데, 포장을 뜯어 언박싱 영상을 찍고 팔로워를 모으는 격이다. 이게 대체 무엇의 지표인가. 소프트웨어의 품질? 아직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기술적 역량? 남이 수년간 쌓은 아키텍처를 하룻밤 만에 옮긴 것이다. 팔로워 많은 계정이 링크를 던지고,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스타를 누르고, 숫자가 뉴스가 되고, 뉴스가 다시 스타를 부른다. 측정되는 것은 가치가 아니라 관성이다. Goodhart의 법칙. 지표가 목표가 되면 지표로서의 의미를 잃는다. 소련 공장이 못 생산량을 개수로 재면 쓸 수 없이 작은 못을, 무게로 재면 쓸 수 없이 큰 못을 만들었다. 가치 없는 GitHub 스타는 바로 그 못이다. 쓸모없고, 숫자만 인상적인. 아이러니하게도, AI 연구자들은 이 현상에 이미 이름을 붙여놨다. 리워드 해킹. AI 에이전트가 의도된 목표는 무시한 채 보상 함수의 허점만 파고드는 행동. 모델 안에서 그토록 막으려는 바로 그것을, 모델 밖에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스타가 채용 시장에서 통화가 되고, 바이럴이 실력의 프록시가 되면, 이건 불가피한 결과다. 탓할 일도 아니다. 다만 그걸 바람직한 개발자 문화라고 부르지는 말자. 원본 소스를 만든 엔지니어들은 지금쯤 조용히 포스트모템을 쓰고, 빌드 파이프라인을 뜯어고치고, 재발 방지 체크리스트를 짜고 있을 것이다. 스타는 하나도 안 붙는, 재미없는 일이다. 원래 우리가 하는 진짜 일은 그렇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대-바이럴 시대의 시대정신에 대하여 가져온 피로감과 이물감을 정확히 꼬집은 글이 아닐까. 선구자 Roy Lee의 방법론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그는 지나치게 많은 복제인간들을 만들어냈다. 인스타 릴스, 링크드인, 스레드, 깃허브 오픈소스 등 무대를 가리지 않고 활약하는 Roy의 (그러나 아버지만 못한) 자녀들.
3. 일방이었던 터라 디스전이라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여하튼 최근 빅나티와 스윙스 간 발생한 비프는 체감상 컨트롤 디스전 이후 국내 힙합 씬이 낳은 최고의 히트작이 아니었나 싶다. 이번 건은 그의 의지가 아니라지만 시끄러운 곳에는 항상 스윙스가 있다. 누가 잘했네 잘못했네 빅나티를 변기에 넣고 내릴 수 있네 없네 한 마디 얹는 건 승패가 가려진 마당에 무의미하지 싶고, 우리효과, IM 컴필 발매하고 딩고와 협업하며 히트곡 뽑아내던 대략 2017-2019년의 IMJMWDP를 정말 좋아했기에 씁쓸함이 남을 뿐이다. 특히 수많은 과오를 감쌀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인간으로서, 리더로서의 스윙스에 대해 (음악은 구리다) 예전부터 존경에 가까운 감정을 가져왔던 사람으로서 더더욱. 이번 사태 덕에 주목받은 것 같은데, 그의 멘탈과 책임감에는 분명 본받을 만한 지점이 있다. 같은 남자로서 대단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