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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6월의 생각들

2311,872
#창업#공동창업#커리어#리스크
목차

창업하는 이유

지난 겨울 당근에서 인턴을 하며 졸업 직후 창업을 하겠노라 다짐하였고 결정적 순간에 운이 좋게도 똑똑하고 선한 사람들을 만나 4월 초부터 (법인 설립은 하지 않았다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당시 결심의 기저에는 과거부터 가져왔던 삶의 가치관 - 임팩트와 생애소득은 내게 이상적으로나 이성적으로나 포기하기 어려운 가치이고 창업은 둘 모두에서 기댓값이 가장 높지는 않더라도 상방이 가장 열려 있는 삶의 행보라는 점 - 과 현재가 Right Timing임을 방증하는 다양한 이유들 - AI 기술의 발전, 사회 분위기의 창업 실패를 용인하는 방향으로의 변화 등 - 이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걸 빼놓았다. 이건 무엇보다 즐거운 길이다.

주 7-80시간 일하며 일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하노라면 창업의 길을 걷지 않는 이들은 으레 '대단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라는 식의 말을 해주곤 한다.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설령 립서비스라 한들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만 내 생각에 진정으로 대단한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일을 즐기는 사람들이다. 구글의 PM으로 일하면서, 토스의 개발자로 일하면서, 맥킨지의 비즈니스 애널리스트로 일하면서 일을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로서는 과연 어떻게 그리할 수 있는지 상상조차 가지 않는 탓이다. 일론 머스크가 대단한 것은 단순히 그가 일을 즐겨서가 아니라 자신이 미친 듯이 즐기고 몰입하는 일을 자신의 직원들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미친 듯이 즐기고 몰입하게끔 강요/유도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창업가/경영진이 아닌 직원/피고용자들이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느냐는 내 생각에 인사 전략의 전부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창업은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다. 창업을 하고 회사를 경영한다는 사람치고 이 일이 즐겁지 않노라 말하는 사람을 아직까지 보지 못했음은 이를 뒷받침한다 - 모두가 '힘들다' '죽을 것 같다'라고는 말해도 '재미없다'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창업을 즐거워하지 않는 사람은 진작에 관두었을 것이기에 얼마간의 확증 편향이 숨어있음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특히 이론의 영역으로 발을 옮기자면 창업은 구조적으로 즐거움과 몰입을 수반함이 확실해진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자신의 저서 <몰입>에서 인간이 가장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플로우'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 즉각적인 피드백, 도전의 난도와 현재 실력 간의 균형, 자율성, 통제권 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스스로 비전과 목표를 설정하며, 투자와 실험의 결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으로 역량의 향상을 체감할 수 있으며, 어떤 기술을 사용할지, 누구와 일할지, 시간을 어떻게 분배할지, 무엇을 만들지 따위를 본인의 의지로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창업가의 삶이 그렇지 않은 삶의 행로에 비해 플로우 경험에 있어 유리할 수밖에 없다.

물론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긍정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없으며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응당 사짜로 의심받아야 한다. 창업 또한 무조건 좋은 일일 리 만무하다. 그래서 창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을 압박감, 불안감, 후회, FOMO, 질투심, 시기심, 소화불량, 수면 부족, 과다한 체지방 따위에 파묻혀 지내고 있으며 반대로 창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우월하게 누렸을 것들, 가령 연애 시장에서의 경쟁력, 부모님에게의 물질적 효도, 친구들에게의 베풂, 취미와 여가 따위를 포기하며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움이란 내게 너무나도 본질적인 요소라서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지 싶다. 원래는 막말로 '3년 내지는 5년 정도 해보고 토스 당근 쿠팡 가지 뭐' 정도의 오만하고도 나이브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AI가 나보다 그 어떤 의미에서든 우월해지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계속 사업하련다.

글로벌

존경합니다 GOAT

더불어 최근 들어 생각이 급격히 바뀐 주제가 하나 더 있다면 바로 글로벌(미국) 진출에 대한 내용이다. 처음 창업을 결심할 때만 해도 글로벌 내지는 미국 시장이 멀고도 불편하게만 느껴졌었다. 아이디어를 확정하고 제품을 만들던 초반에 깊이 몰입하지 못하고 내면으로부터의 의구심이 무럭무럭 싹트던 시기가 있었는데(요새도 계속 그러긴 한다) 이제 와 당시에는 투명하게 볼 수 없었던 이유를 되짚어 보자면 생각건대 미국에서 플레이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아이디어라는 점이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허나 요새 들어 태평양의 물리적 거리야 여전하겠다만 마음속에서는 모종의 장벽이 허물어져 심리적 거리가 현저히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국내 대학의 학부생들로 이루어진 스타트업이 YC Batch에 합격하는 사례가 근래 세 건이나 나왔고(Typa, Pickle, Hyprnote), 특히 Pickle의 성공 사례를 지켜보고 있자면 '나도 할 수 있겠다' 류의 오만한 마음이 첨가된 설렘과 기대감으로 가슴이 뛰는 게 느껴진다. 자랑스러운 과 선배님이자 학회 선배님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해 마지않는 김동신 대표님께서 가로되 "세상은 원래 글로벌인데 네가 대한민국에 있을 뿐"이라 하셨으니 최근 들어서야 그 말의 진의에 어렴풋이나마 공감하게 된다.

사실 시장 사이즈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물론 간다면 투자 받고 팀원들과 함께 가겠지만) 혈혈단신으로 미국에 가는 것이 대단히 고통스럽고 불편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3-6개월 체류하며 미국 문화에 녹아들려 노력하고 미국 회사들과 경쟁하며 이해도가 제로인 미국 시장에서 먹힐 제품을 만드는 것은 아마 지금까지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빡센 도전일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가족과 친구를 면대면으로 볼 때의 온기에서 얻을 수 있는 정서적 지원 또한 포기해야 하고, Burn Rate는 최소 3-4배로 뛰며, 이를 감당하고자 미국 VC에게 투자를 받고자 한다면 서울대 딱지가 무의미해지는 탓에 한국 법인 세워서 한국 VC에게 투자 받는 것 대비 난도가 어마어마하게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건 확실히 Uncomfortable Zone이다.

그런데 불편할 때 성장하는 것은 지고의 진리인 탓에 젊을 때 미국 가서 사업을 해보는 경험이 향후의 인생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얼마간 자명해 보인다. 비즈니스 씬에서 자리 잡으신 선배님들께서 입을 모아 말씀하시기를 커리어 첫 3-5년의 중요도는 상상 이상으로 높아 그때 체화한 습관 일하는 방식 경험한 성장의 기울기와 같은 것들이 이후의 삶에 대단히 큰 영향을 주는데 그렇다면 인류의 거의 모든 혁신을 선도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일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동네에서 부딪쳐 보는 것이 장기적인 단에서 우월전략일 터이다. 성장을 스스로 인식했던 순간들을 돌아보면 늘 불편과 불안이 내재되어 있었다.

(한편 행복이 인생 제일의 목표가 되어야 함은 역시 지고의 진리인 동시에 나의 가치관에 속하는데 그렇다면 성장-성공이 대체 무어라고 행복의 반대편에 놓일 확률이 높은 불편함의 영역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가는지 자기합리화가 어려울 때도 있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아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에 살아가는 건 확실히 졸라게 어렵다. 특히나 커리큘럼 따라 하라는 공부만 해와서 좋은 대학 간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최근에 읽으면서도 드는 생각인데 Book Smart와 Street Smart의 차이, 화자와 조르바의 차이가 같은 맥락에 놓일 듯. 진정한 선택의 순간을 맞닥뜨렸을 때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단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근육을 수능 공부 대학 공부는 네버 에버 키워주지 못한다.)

다만 아무거나 글로벌로 가지고 나간다고 성공할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닐 것 같아서 고민이다. 가령 브라우저를 조작할 수 있는 오픈소스 AI Agent를 2n년간 된장찌개 먹고 산 한국 대학 나온 학생 셋이서 세상에서 제일 잘 만들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열정이든 몰입이든 스칼라가 아닌 벡터고 그러니 방향을 똑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때 사용할 수 있는 파워풀한 나침반 중 하나는 K-Arbitrage일 테다. 이를테면 F&B, 뷰티, 엔터테인먼트, 중공업, 반도체... 이런 분야라면 대한민국이 지니는 경쟁우위는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강력해진다. 가령 F&B와 AI를 접목시킨 모종의 아이템이라면 나와 우리 팀이 세상에서 가장 잘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Zone of Genius

스타트업 하는 사람이라면 Carrying Capacity 영상은 필청해야

얼마 전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플레이북>이라는 좋은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서 나오는 'Zone of Genius'의 개념이 뻔하지만 인상적이었다. GTD니, PARA니, Eisenhower니 일의 우선순위와 위임에 대한 수많은 프레임워크를 공부하고 나름대로 혼합하고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나가며 한편으로는 '나의 Soul Work는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중이었어서 더더욱. 내용은 대강 이렇다 :

모든 일을 다음의 4가지 영역 중 하나로 구분할 수 있다 : 1. 무능한 영역 : 다른 사람들이 당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로, 천재성을 발휘할 수 없고 무능해짐. 즐거움을 주지 않는다면 외부에 위임하는 것이 좋음. 2. 능숙한 영역 : 당신도 잘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잘할 수 있는 영역. 역시 딱히 즐겁지 않다면 외부에 위임하는 것이 좋음. 3. 탁월한 영역 : 당신이 남들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하면서도 진정한 즐거움을 얻지는 못하는 영역. 이 영역이 특히 위험한데, 당신의 뛰어난 능력 때문에 주변에서는 당신이 그 일을 계속하길 바랄 것이기 때문. 그러나 조금씩 이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함. 4. 천재적인 영역 :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면서 동시에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하는 영역. 시공간이 사라지는 몰입을 경험할 수 있으며, 세상과 자신에게 가장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이 영역에서 보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함.

<데미안>의 첫머리에서 헤르만 헤세가 탁월히 짚었듯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이기에 메타 인지와 자기 이해는 삶의 유일한 목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데, 그러니 책을 덮고 나의 '천재적인 영역'은 어디에 놓여있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존재하고 평가받았던 수많은 순간들과 지난 n년간 수행했던 수많은 일들을 되짚어 보며 행한 귀납적 프레이밍은 '준비된 스토리텔링'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완결된 논리적 구조를 갖춘 무언가를 떠들어 제껴야 하는데 즉흥적이면 안되고 준비된 판이 깔려 있어야 한다. 즉흥적인 스토리텔링 가령 술자리 썰 풀기에 나는 취약하다. 그렇다면 '준비된 스토리텔링'의 예시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이 글과 같은 유의 에세이틱한 글쓰기(그렇다고 이것이 천재적인 글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IR 피칭, 혹은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것들 중 예시를 들자면 토스 이승건 대표가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PO Session이나 스티브 잡스의 WWDC 발표, 혹은 TED 강연과 같은 것들. 1)어떤 주제에 대하여 기존의 의견에 나의 고찰을 덧붙여 인사이트 덩어리를 만들고 2)그것을 가장 적절한 순서와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배열한 결과물을 3)다양한 방법으로 공개하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왕이면 서면보다 대면이 재미있고 내가 더 높은 수준의 경쟁우위를 갖춘 영역인 것 같다)이야말로 나의 soul work에 해당하는 것처럼 지금의 내게는 느껴진다. 준비하고 이야기를 하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시간 감각을 흐리게 만들 정도로 재미있고, 보아하니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는 것 같고, 세상도 좋아한다. 조건을 조금 추가하자면 논리정연한 종류의 이야기일수록, 창조된 세계보다는 현실 세계에 발붙이고 있을수록 나의 천직에 가깝다. '웹소설 쓰기' 이런 것도 하라면 하겠지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은 아닐 듯.

대학교를 다니고 경영학회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최근 창업을 하며 다양한 지원사업과 데모데이에 참여하여 피칭을 하며 새삼 느꼈다. 나는 중고등학교 수행평가를 하던 시절부터 반 친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퀄리티의 PPT를 만들고 월등히 뛰어난 발표를 했었는데 불과 몇 년 전까지는 내가 PPT 만들기를 되게 즐거워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컨설팅 스타일의 장표(여전히 이와 같이 눈을 둘 곳 없이 거의 기하학적 예술을 펼치는 시각 자료의 제작 방식을 통틀어서 혐오한다 - 그러니 스티브 잡스는 모든 의미에서 컨설팅을 역겹다고 생각했을 것이다)의 맛을 보니 아니더라. 내가 재미있어한 것은 여백의 미를 중시하며 한 슬라이드에 구태여 여러 이야기를 담지 않는 잡스-like 장표를 제작하는 과정이었고 그것이야말로 시각 자료의 제작 및 배열이 곧 스토리텔링과 대응되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 장표에 수백 자씩 글밥을 욱여넣고 'One Slide One Message'를 강조하는 꼴은 지극히도 이율배반적이다!

다시 경영학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나는 화면을 쪼개가며 이미 완성된 스토리의 일부를 괴상한 도형의 총합으로 시각화할 때 즐거웠던 것이 아니라 늘어져 있는 이야기의 재료를 어떤 프레임 속에 가두어서 어떤 순서로 전달할지를 고민할 때 즐거웠고 그것을 제일 잘했다. 어떤 구조의 Hierarchy 하에 어떤 정보를 wrapping해야 가장 논리적이고 깔끔하게 전달될지를 고민하는 작업. 각설하고 너는 이런 걸 잘하니까 컨설팅 가서도 잘할 거라는 식의 칭찬을 많이 해주었고 그래서 대체 컨설팅 회사란 곳은 무얼 하는 조직이길래 이런 블록 맞추기 게임이 업의 본질에 가까운가 싶었다 - 아님 말고. 하도 궁금해 RA라도 해서 찍먹해볼까 싶었지만 시간과 건강은 소중하니까ㅎㅎ

이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미감의 영역과도 얼마간 맞닿아 있음을 느낀다. 본능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구조와 논리, 이야기가 존재한다. 사람 마음 참 못 읽는 나지만 여기는 좀 예외이고 심리학과도 접한 영역인데다 무엇보다 Opinion Leader의 자리가 AI에게 쉽게 넘어갈 것 같지는 않아서 대체 가능성도 높게는 보지 않는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지적했듯 인류 문명은 이야기로 만들어졌고 여전히 이야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닌 가장 강력한 가치 전달의 매개체이며 BCI의 상용화 이전까지 그 공고한 자리를 지켜낼 것이니까... 다만 이걸로 밥 벌어 먹고 살수 있냐 묻는다면 물론 그러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자기 삶에서 이뤄낸 것 없이 강연과 의견 팔이를 업으로 삼는 사람을 정말 끔찍이도 같잖게 생각해서... 누구나 경험하는 삶의 본질적 영역과 맞닿은 곳에 대한 이야기라면 사회적으로 이룬 것 없이도 떠드는 것이 정당화 되겠다만(절대다수의 철학자들의 커리어 초기는 꼭 그러했을 것이다) 그건 또 내 전문분야는 아니지 싶다. 그래서 사업이든 뭐든 성공하고 유명해진 다음에 엑싯하고 쉴 때라든지 아니면 늘그막에 식당 차리고 나서 강연과 멘토링을 많이 다니고 글을 많이 쓰고 싶다 - 어쩌면 샘 올트먼보다 폴 그레이엄이 되고 싶은 것일지도? 자아효능감, 돈, 재미, 세상의 니즈 모든 것을 충족할 터이니 이것이야말로 '이키가이'가 아닐지.

피벗: Bottom-up Founder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데모데이 우승 이후 팀원들과 약속한 1주일의 휴가를 가지고 복귀했고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지금까지의 세 달 어땠는지, 서로는 어떤 동료였는지, 나는 이 팀에 무엇을 기여했고 무엇을 부족하게 했는지... 가감 없는 피드백 이후 3분기 OKR 미팅을 진행했는데 도중에 모두가 이 아이템에 애착이 없음을 불현듯 깨달았다. 대단히 공감하는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히 잘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우리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제품도 아니고...

더 이상 끌고 가는 건 무의미하겠다 싶어서 피벗하자고 했다. 일반적인 피벗은 확실히 아니었다. 데모데이 1등 해서 300만원 타고, 굵직한 VC/AC 서너 곳으로부터 먼저 연락받고, 한 곳으로부터는 제법 진지한 러브콜을 받은 상황에서의 피벗. 제품 개발한지 한 달 만에 연매출 10조 넘어가는 국내 대기업에서 선제적으로 도입 문의를 주고, 광고비 한 푼 안 쓰고 국내에서만 40개사 가까이 리드로 전환시켜 놓은 상태였으니 가령 내 친구가 이런 의사결정을 내렸다 가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견지하며 평가한다면 돌았냐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피벗을 의미하는 시그널은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한 시장의 부재, PMF 탐색의 실패와 같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은 전무했고 외려 아이템의 앞에 놓인 미래가 장밋빛이었냐 흙빛이었냐 이분법적으로 묻는다면 장밋빛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이 아이디어는 죽었다고 내게는 느껴졌다.

내 생각에 창업가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現 베이스벤처스 대표 / 前 토스 Co-Founder이신 이태양 대표님께서 강연에서 해주신 말씀을 빌리자면 이 두 가지 유형의 이름은 '문제형 창업가'와 '목표형 창업가'이고, 내 방식대로 말하자면 'Bottom-up 창업가'와 'Top-down 창업가'이다. 전자는 미친 듯이 해결하고 싶은, 삶을 잠식해버릴 만큼 거대한 문제가 마음속에 있어 그것을 일생의 업으로 삼아 집착하듯 매달리는 사람들.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이고 비탈릭 부테린, (애매하지만) 브라이언 체스키 정도가 해당될 수 있겠다. 후자는 창업 그 자체, 높은 소득, 미친 임팩트 등 보다 상위의 목표가 존재하며 그것을 위해 모종의 문제와 아이템을 수단으로서 사용하는 사람들. 링크드인의 리드 호프먼, Notion의 이반 자오, 쿠팡의 김범석 대표, 크래프톤의 장병규 의장 등이 여기에 속할 것 같다.

사실 이것은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 스펙트럼 위에 놓고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며 무엇보다 개인의 일생에 걸쳐 스펙트럼 위에서의 좌푯값은 시시각각 변화하기에 거대한 이름들을 수직선 위에 나열하는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가령 토스의 이승건 대표를 보면 누구보다 금융의 혁신에 미쳐있는 '문제형 창업가'처럼 보이나 <유난한 도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목표형 창업가'의 전형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애초부터 금융의 혁신에 골몰했었다면 룰루랄라인지 울라울라인지 하는 위치 기반 SNS 따위 손도 대지 않았을 터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재 상황에서 Top-down 창업가의 status에 놓여 있음을 그리고 이로부터 기인하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꽤나 중요해 보인다. Bottom-up이건 Top-down이건 결국 풀어야 하는 문제를 찾아야 함은 동일하고 그렇다면 Top-down 창업가에게는 '군침이 흐르는 문제를 찾는' 하나의 퍼널이 추가되는 셈이다. 이때 Top-down 창업가는 풀 문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지닌 상위 목표와의 Alignment, Problem-Founder Fit, 시장의 니즈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반면 Bottom-up 창업가의 경우 마지막의 한 가지만을 고려해도 된다. 그러니 Top-down 창업가의 경우 자연히 상대적으로 낮은 강도의 Problem-Founder Linkage를 지니게 되고 따라서 demotivation에 따른 피벗에 취약해진다.

결국 성공한 창업가는 누구든 'Bottom-up 창업가'가 되어야 하는데 거기까지의 여정이 대단히 험난하다는 사실이 나를 포함한 모든 'Top-down 창업가'들이 지니는 한계다. 정확히 말하면 'Bottom-up 창업가'와 'Top-down 창업가'가 존재한다기보다는 'Bottom-up 창업'과 'Top-down 창업'이 존재한다. 이때 'Top-down 창업'도 어차피 'Bottom-up 창업'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기에 모두가 Top-down => Bottom-up의 길을 걸어야 하거늘 이 길은 가시밭길이기에 중도 이탈자가 속출한다. 나도 인생의 사명 같은 것이 있었다면 좋으련만. 유일하게 있다면 인간을 영생의 종으로 만들고 싶은데(일단 나 자신부터 영원히 살고 싶어서) 그건 지금 내 역량 밖의 일이다. 내가 메시처럼 위대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당장 K리그 입단 테스트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여하튼 잘 찾아봐야지. 생각해 보면 일론 머스크가 그냥 미친 특이 케이스인거라 모두가 일론처럼 될 필요도 될 수도 없다. 그리고 내 생각에 일론도 자기를 굉장히 잘 포장한 거다. 스페이스X, 테슬라가 정말 '인생의 소명'이었다면 왜 20대에 Zip2같은거 만들고 앉아있었겠나. 샘 올트먼도, 제프 베이조스도 마찬가지. 결국 가장 일반적인 행로는 일단 하다 보니 사명이 다가오는 것이고 그런 방식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젠슨 황과 마크 저커버그를 포함한 수많은 기업가들이 증명해 왔다. 아직 젊다면 젊겠지만 2n년 살아오면서 배운 두 가지 레슨은 1)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황에서 장고는 악수로 이어지며 2)뭐든 바라면 떠나가고 딱히 바라지 않으면 찾아오는 법이라는 점이기에 => 이 주제에 대해서도 맘 편히 먹고 눈에 불을 켜고 overthinking하지 않으려 한다.

그 외...

<채식주의자>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드디어 읽었다. 마지막으로 한국 소설을 읽은 것이 언제였나 생각을 더듬어봐도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에세이는 종종 읽었는데... 여하튼 국문학을 정기적으로 읽어야겠다 싶었다. 애초에 대단히 뛰어난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번역본이 절대로 따라올 수 없는 맛이 있다. 이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독자의 특권! 내가 <롤리타>를 온전히 즐길 수 없듯 외국 독자들은 <채식주의자>를 온전히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며 새로 알게 된 단어들이 몇 있는데 사전에 설명을 검색해 보면 반드시 그 단어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더라. 이를테면 '아내의 (중략) 옆얼굴을 나는 염오감을 감추지 못한 채 건너다보았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염오감'을 '혐오감'으로 대체하면 맛이 없어진다. '혐오감'은 급작스러운 이상 행동에 염증이 나고 이골이 난 화자의 심리를 충분히 포착할 수 없다. 번역이 어려워서 국문학이 노벨상을 받을 수 없다는 케케묵은 헛소리를 반복하려는 건 아니다(실제로 받았으니까). 여하튼 '물컹물컹한 환멸을 씹다' 이런 표현 진짜 죽여준다.

나는 영화를 책보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책이 더 재미있다. 바쁘다는 이유로 영화관 방문이 뜸해졌기 때문인지 - 책은 일터를 오가는 버스에서 읽기에 딱이니까. 아니면 올해 신작들이 영 아쉬웠던 탓도 있겠다. 특히 <페니키안 스킴>과 <퀴어>는 크게 기대했었는데... 모종의 의무감과 허영심(그런데 <채식주의자>의 선택이 애초에 허영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반박은 어렵다)을 완전히 탈각시킨 채 순수한 흥미에서 비롯된 독서를 한 것은 초등학생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그때 읽었던 책은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었는데, 이후에 어떤 스토리가 펼쳐질지 궁금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40분의 수업이 시작되면 수업을 듣는 둥 마는 둥 머릿속은 온통 엄석대와 한병태 생각뿐이었다가 10분의 짧디짧은 쉬는 시간이 시작되면 책상 서랍에 들어갈 만큼 얇은 연두색 표지의 책을 꺼내 게걸스럽게 읽었던 그때 그 시절... 중학교 1학년 때 비슷하게 앉은 자리에서 독파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트> 양장본도 생각나고. 그래서 십수 년이 지나 다시 찾아온 문학에의 온전한 몰입 경험이 참 반갑다.

마지막 수업

6월 13일 금요일 '창업론 실습 2' 수업 최종 발표가 생각해 보니 관악에서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F 30% 정도를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훈련소 마지막 날 여자친구와의 이별의 날 등등 수많은 감정적 순간에서 어김없이 울어왔던 사람으로서 이번에도 눈물이 나거나 최소한 파노라마처럼 관악에서의 n년이 스쳐 지나가며 감상에 젖을 줄 알았건만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마지막 날임을 인식하고 있었는데도!

그보다 머릿속에 자리 잡은 유일한 생각은 '자퇴할걸' - 무가치한 졸업장을 위한 무의미한 레이스를 조금 더 유의미하게 채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그래도 나의 경우 대학 생활의 전반부를 다소 unsocial하게 보냈다 보니 대학에서 얻은 훌륭한 인연들의 획득 시점이 후반부에 쏠려 있는데 몇 년 전 자퇴했다면 그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기에 그것에 감사하며... 그렇다 한들 일 년 전에 자퇴했었다면 적당히 괜찮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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