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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일지 EP.02

199,782
#당근#PM#인턴#조직문화
목차

시작하며

2025년 01월 06일부터 2025년 01월 17일까지 2주 간의 기록. 얼레벌레 인턴십 기간 삼 분의 일이 벌써 흘러갔다니 믿을 수 없을 따름...


곳간에서 인심 난다

맛집 포스트를 쓰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말이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대의 변화에 형형했던 빛이 바래 아포리즘에서 망언이 되어버린 말도 있고 애초에 모두가 동의할 수 없게 태어난 말도 있다. 생각해 보면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라는 말은 재귀적 혹은 메타적인 (옛)말이라 그 자체가 틀림으로써 틀려진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옛말은 동/서/고/금 남/녀/노/소 어떤 필터를 걸어도 성립하는 말이다. 직관적으로 그러하고 최소한 경험을 반추해 보았을 때 반례를 찾지 못했다. (주의할 것은 해당 명제의 반례는 '곳간에서 인심 나지 않는다'이지 '곳간이 없는데 인심 난다'가 아니라서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가 종종 존재하고 진정으로 대단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다) 내 자신만 보아도 하루하루 잔고가 줄어가는 불안에 시달리며 학교를 다닐 적과 휴학하고 적지 않은 돈을 받으며 회사를 다닐 적 사람이 뿜어내는 여유가 달랐음을 당시 나와 교류했던 사람들의 상이한 반응으로 미루어 안다.

당근의 곳간은 물론 수천억 원의 투자금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2023년 2Q를 기점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하여 이제는 정말로 자족적 곳간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원체 사내 문화와 구성원 간 신뢰를 중요시하기에 곳간이 차기 전부터 베풂의 미덕을 무척이나 중요시했던 회사이나 런웨이가 있냐 없냐는 중대한 차이일 것이다. 사내 복지로 귀결되는 하나 하나의 인심이 구성원의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침을 체감한다. 대표적으로 식대 무제한 복지가 있을 터인데 대략 이만 원 정도는 눈치 안 보고 먹어도 되니 운신의 폭이 넓고 식사 시간이 훨씬 즐겁다. 재작년에 두 달 정도 인턴으로 근무했던 스타트업의 경우 식대 만 원 제한이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비싼 메뉴 앞에서 발걸음을 돌릴 때의 서러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양 많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강남에서 만 원으로 먹을 수 있는 점심 메뉴는 대단히 한정적이란 말이다.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시켜먹을 때 '샐러디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아서 오는 거 처음 봐요'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한풀이를 하고 있다. (우삼겹 메밀면 샐러드에 메밀면 추가 채소 추가 연어 추가를 했다) 저번 주에 스아게를 처음 가서 스프카레를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상기한 훌륭한 복지 + (감히 내가 평가하는 것이 어불성설에 가까울) 높은 인재 밀도 + 회사가 그리고 있는 성장 곡선 등이 일종의 긍정 피드백을 형성하니 자연히 '구성원의 업무 만족도 증대' 또한 플라이휠에 자리한다. 누구도 출근할 때의 얼굴이 흙빛이지 않고 누구도 퇴근만을 바라보며 무의미하게 시간을 때우려 하지 않음은 놀라운 광경이다.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데 '가정'을 '회사'로 치환하자면 당근은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드문 회사 중 하나지 싶다. '과연 회사가 행복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회사의 구성원이 업무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과연 긍정적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리겠지만, 둘 모두에 YES라 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근 이상의 회사를 상상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자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나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얼마간 유보적이다)

복지 얘기를 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 글에서 이직이 용이해진 현대 사회에서 인재 밀도의 극대화를 위해 HR 직종의 중요성이 배가됨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한편 HR 직종의 본원적 어려움은 정량화의 불가능성에 놓여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식대 무제한 지원 복지로 예를 들어보자. 당근의 직원이 대략 500명이니 일 년에 250일을 출근해서 매번 이만 원 짜리 밥을 사먹으면 이건 연 25억짜리 복지다(재택 근무로 인한 감소분과 저녁 식대로 인한 증가분은 대략 상쇄된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따져봤을 때 해당 복지의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은 해당 복지가 당근에게 안겨다 준 순이익이 25억 원 이상이냐 아니냐다. 광고에 들인 비용과 광고가 창출한 수익을 비교하여 캠페인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마케팅 문법과 정확히 동일하다. 그런데 디지털 마케팅에서 ROAS를 측정하기란 대단히 쉬운데 복지에 대하여 Return을 어떻게 측정한다는 말인가? 어떤 직원이 얼마를 벌어줬냐를 정량화하는 것도 어려운데 복지의 정량적 효용을 따지려면 해당 직원의 성과에 복지가 얼마나 기여했냐를 가중 평균의 형태로 따져봐야 한다. 뉴럴링크가 상용화된다면 가능해지려나? 회사를 떠나는 가능세계가 존재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정량화된 성과 * Retention에 복지가 영향을 미친 비율 * 성과에 복지가 영향을 미친 비율로 계산하고, 여집합에 속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성과 * 복지 비율로 계산하는 식으로... 물론 HR에 대해서라면 문외한이라 이미 HR의 구루 누군가가 방법을 개발해 두었을 수도 있다.


마수걸이 프로젝트

당근알바에서는 이런 소소한 알바들도 할 수 있답니다

두 주 간의 적응기를 끝내고 처음 맡게 된 프로젝트는 마케팅 팀과의 협업을 통해 진행하는 2025 설날알바 프로모션이었다. 설 연휴 시즌에 맞추어 구인자와 구직자 각각에게 알바 공고 작성과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 골자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실수 연발이었다.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이 사용하는 용어 그리고 그들의 작업 방식에 대한 몰이해, 타고난 부주의함, 인수인계의 부재로 모든 것을 직접 찾아가며 맥락을 이해해야 했던 상황 등이 겹쳐 실제로 구박받은 적은 한 번도 없으나 구박데기로 전락한 것 같았다. 정확히 일주일 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배포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만원 지하철의 문이 열릴 때면 '오늘은 또 무슨 실수를 할까?'라는 두려움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중요한 일로 바쁜 나를 제법 즐겼더랬다.

분명 실력과 조심성의 부족으로부터 기인한 문제이기도 했으나 한편 PM의 세계에 생애 처음 발 디딘 자가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이기도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M 직군의 경우 유독 신입/인턴 채용이 적은 이유를 그동안 머리로만 알고 있었는데 비로소 체화했다. 조직마다 하는 일이야 다르겠지만 PM이 주로 하는 일들이 (특히 해당 조직 내에서의) 충분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탓이다. 팀의 생리와 문화 그리고 구동 방식에 대한 이해, 개별적으로 커스터마이징된 소통 방식은 경험 없이 쌓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내가 일주일 간 불러일으킨 그 모든 비효율과 불편에 대한 변명으로서 (아마 누구도 이 글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실수와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성공에서 배우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많고 결국 큰 문제 없이 배포가 되었기에 철저히 이기적인 관점에서는 성공적이었던 한 주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특히 프로모션 배포 전 날 갑작스러운 스킴 변경으로 엔지니어 두 분과 상의하기 위해 가졌던 미팅에서 정말 많은 걸 느꼈다. A라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B가 최선의 해결책이었고 그래서 짧은 시간 내에 노션 단을 나누어 AS-IS와 TO-BE를 Fancy하게 비교하는 해결책을 시각화했다 그리고 뿌듯해했다. 급히 어레인지한 미팅에서 신나게 떠들어댔더니 '그래서 맥락과 문제가 정확히 무어냐, 그것은 해결책 중 하나에 불과하고 아마 최선의 해결책이 아닐 것이다'는 뉘앙스의 답변이 돌아왔고 엔지니어 두 분의 입에서는 생각도 못 한 해결책들이 꽃피더니 결국 훨씬 간단하고 side effect가 적은 방식을 제안해 주셨다. PM의 경력이 엔지니어보다 현저히 길지 않은 이상 엔지니어링 관점에서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데 있어 PM의 전문성은 엔지니어의 그것을 앞설 수 없다. 엔지니어를 디자이너로 치환해도 동일하다. Maker들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이 필요함을 깨달은 한편 그렇다면 Manager의 역할 및 책임의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하루였다.


유저 인터뷰

명심!

설날알바 프로젝트를 managing하며 동시에 유저 인터뷰를 시작했다. 엔쇼 하면서 야매로 서베이야 많이 해봤지만 유저 인터뷰를 할 기회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고 그나마도 팀원에게 해달라고 부탁할 때가 많았다. 잘 할 자신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싱가포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던 기업과의 산학 세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사이트 도출을 위해 틴더 유료결제 후 가계정을 만들어 싱가포르 여성을 가장한 채 데이트와 인터뷰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 적은 있다만 그나마도 참신한 접근법에 비해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는 못했었다. 직접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기도 했고...

이렇듯 경험이 일천한 탓에 <린 고객 개발>, <UX 리서치> 등 회사 노션과 브런치 등지에서 추천받은 책을 읽은 후 질문 템플릿을 만들기도 하고, 출근길에 스크립트를 보고 혼잣말을 하며 머릿속으로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했었다. 그래도 엔쇼에서 산학 Q&A 답변하던 짬바가 어디 안 갔는지 질의응답의 과정 자체는 매끄러웠고 초보의 느낌이 많이 나지는 않았던 듯하다. 물론 이는 무엇보다 지난 주의 인터뷰이 셋 모두가 대단히 따뜻하고 편안한 이들이었기 때문인데 애초에 후기를 잘 써주거나 서비스를 잘 이용해준 사람들을 대상으로 진행했기에 경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고객을 만나며 참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경험과 역량 그리고 F력의 부족으로 그들과 그들이 겪은 사례의 상(像)을 다각도에서 묘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치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드러냈던 과정처럼... 여하튼 나중에 창업을 하든 뭘 하든 간에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솔직한 반응을 이끌어내는 능력은 꼭 필요한 능력일 거라 짧은 인턴십 기간 동안 밀도 높게 정진해야 하겠다는 생각.


원만함의 함정

당근에서의 한 달을 보내며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내가 보이는 악습을 비로소 깨달았는데 '원만함'을 일 처리의 1순위 기준으로 삼는 버릇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A안 - 고객에게 더 많은 옵션을 제공할 수 있어 고객 경험 차원에서 분명히 더 우월하나, 배포 일정이 빠듯해서 나 그리고 팀원들 중 몇이 야근을 해야 함 - 과 B안 - 개선의 여지가 있지만 문제는 없어서, 아무런 제안 없이 기존 스펙대로 배포함 - 이 존재한다고 할 때 나는 무조건 B안을 택해왔다. 일을 추가하기 싫은 것은 모든 직장인의 마음을 관류하는 니즈가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우습게도 나는 내가 일하기 싫어서 B안을 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일하는 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남에게 더 일하라고 종용하는 것이 싫다.

결국 세상 만사가 그렇듯 일도 선택의 문제다. 이를테면 정성일 평론가는 자신의 저서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에서 이런 말을 했다 :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선택이다. 이쪽을 해도 괜찮고 저쪽을 해도 좋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이며, 그 영화의 미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본다는 것은 결국 그 선택의 순간을 이해하고 혹은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일관적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는 자가 우수한 영화감독이고 동일한 맥락에서 우수한 일꾼(일꾼이라고 하니까 마르크스가 된 것만 같으니 '일잘러'라는 표현을 사용해야겠다)인 셈이다. 동일한 task라 할지라도 이를 처리하는 n개의 방식이 있을 것이고, 일잘러는 여기서 최선의 선택을 내릴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실수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원만함을 1순위 평가 기준으로 놓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원만함을 지나치게 높은 순위의 평가 기준으로 놓은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평가 기준에 편입시킨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물론 특히 당근과 같이 따뜻한 문화를 지닌 기업에서 그것도 인턴으로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원만함을 무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후순위로 미루려고 노력은 해 봐야지. 내 생각에 원만함은 임팩트 혹은 속도와 어느 정도는 Trade-off 관계에 놓인다. 최근에 일론 머스크 전기를 본 탓일지도 모르겠다만 적당히 괜찮은 리더는 싫은 소리 없이 원만하게 프로젝트를 이끌 수 있지만 탁월한 리더는 구성원들을 한계까지 밀어부쳐야만 한다. 대여섯 명 정도로 구성된 초기 창업팀이 아닌 이상 모두에게 사랑받는 리더는 최고의 리더가 아닐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가 지구 역사상 최고의 기업가들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Next Step

Next Step => Next Level => 에스파 => 카리나 => 안유진 카리나 콜라보 무대로 이어지는, N에게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련의 사고회로옆에 서니 확실히 카리나가 객관적으로 더 예쁘다 그런데 여전히 안유진이 더 좋다 이런게 사랑일까?

모름지기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살아갈 수밖에 없고 졸업을 앞둔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미래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을 그리고 응당 그래야 할 시기라 과거와 미래가 밀려날 만큼 현재의 업무와 실수에 대한 걱정 속에서 살아낸 사 주였음에도 미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래서 당근 인턴 끝나고 졸업하면 뭐 할거야?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지금의 대답은 창업이다. 물론 나는 내 스스로 심지가 곧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이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응답 확정' 버튼을 섣불리 누르지는 않겠으나, 살아온 이십칠 년의 (혹은 윤석열 식으로 이십오 년의) 삶을 통틀어 창업에 대한 열망 및 확신의 정도가 지금 최댓값을 가짐은 결코 가벼이 여길 사실이 아니다. 잡스 저커버그 머스크가 존경스러워서, 성공한 창업가들의 fancy한 삶이 부러워서 막연히 창업을 동경하던 가짜 지망생 시절과 비교하면 눈앞이 훨씬 맑아졌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임팩트. 임팩트는 개인이 아닌 조직에서 나온다. 예외라면 작가와 화가 정도일텐데 현대에 다다르며 작가와 화가의 범세계적 임팩트가 약해지고 있음은 협업의 방식이 고도화되며 조직으로서 낼 수 있는 임팩트가 개인으로서 낼 수 있는 임팩트를 현저히 상회하게 된 것과 떼어놓을 수는 없다고 본다. (물론 바로 이 지점에서 예술가는 인류 최후의 직업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이 낼 수 있는 임팩트의 총합은 결국 조직의 임팩트와 조직 내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의 곱으로 연산될 수 있는데 당연히 취업은 전자에 창업은 후자에 강점이 있다. 그런데 취업의 케이스에서 최초 n년간 혹은 1n년간 후자의 값은 내 생각에 '극히 미미해서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range를 벗어날 수 없고 심지어 이것은 일반적으로 전자의 값과 반비례한다. 그러니까 곱연산의 특성상 둘 모두 유의미해야 결과값이 유의미한데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창업이 Fast track임은 자명하다. 취업의 케이스에서는 박스권을 벗어날 희망을 가지기조차 요원하다.

둘째는 뻔하지만 생애 소득이다. 기본소득제의 실시 이전에 세상에 도착한 사람으로서 이 이유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이걸 고려하는 사람이 속물적인 게 아니라 무시하는 사람이 바보다. 당연히 흑자를 내거나 엑싯을 하기 전까지의 소득은 취업을 하는 케이스에 비해 열등하다. 어쩌면 소득이 정말로 0일지도 모른다 - 버는 것이 가능한데 못 번게 아니라 버는 방법 자체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null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특히 나는 재수없는 얘기지만 학벌이 좋고 발 담근 곳도 많아 기회비용이 크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적어도 지금 예상하기로는 나는 토스의 이승건 대표라든지 칠전팔기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처럼 n번 실패해도 n+1번 도전할 위인은 아니다. m(m<5)년 해보고 사이즈 안 나오면 다른 길을 찾을 성싶은데, 그렇다면 max 5년 동안 내가 진정으로 '벌' 수 있는 돈 다시 말해 월급 받고 쓸거 쓰고 남아있을 돈이 얼마일까를 생각해보면 아무리 희망적으로 잡아봐야 3억이다. 겨우 3억 벌자고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조금 더 수학적으로 접근해보자면 내가 보기에 극히 일부의 예외를 제외할 시 보편적인 취업 테크트리에서 연차별 근로소득을 단순화하면 대략 로그함수를 따를 것이다. 분명히 점근선이 존재하고 커리어 초반의 상승이 후반의 상승보다 오히려 용이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 로그함수는 적분해봐야 y=xlogx니까 연차별 누적 소득은 linearithmic하고 이건 기실 일차함수랑 큰 차이가 없다. 영 멋이 없다. 최소한 이차함수는 되거나 조금 더 희망적으로는 지수함수는 되어야지 멋지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면 그래야지만 큰 걱정 없이 부모님을 부양하고 처자식을 먹여살릴 수 있을 것이다. 연차별 누적 소득이 이차함수가 되려면 역산했을 때 연차별 소득은 일차함수가 되어야 하고, 지수함수가 되려면 같은 지수함수여야 한다. 개인의 가치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지 않는다. 조직의 가치 정도는 돼야 비벼볼 만하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 정도의 급경사를 그리는 지표는 기업가치 뿐이다. 항상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팀 리더분이 얼마 전의 점심식사에서 잘 정리해주신 바 그의 표현을 조금 섞어본다.

셋째는 리스크 헷징이다. 창업은 취업 대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행로인데 요즘 들어 리스크가 조금씩은 줄어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일단 생성형 AI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전처럼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프로젝트에 수 개월 내지는 수 년을 투자하는 경우가 얼마간 예방 가능해졌다. (물론 생성형 AI의 발전은 한편으로 창업의 리스크이기도 한데 이건 취업도 마찬가지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실패를 '어느 정도는' 인정해주는 문화로 접어든 듯 보이기 때문이다. 요새 토스의 JD를 보면 '실패 혹은 성공한 경험'이라는 식으로 실패를 성공보다 앞에 두는 표현이 보일 정도이다. 실패에 성공(혹은 안주) 이상의 value를 부여한다면 개인의 성장 관점에서 best option일 것임이 자명한 창업의 리스크가 현저히 줄어든다.

유일한 고민은 비전의 부재. '나 창업할 거에요'라는 말을 하면 '그래서 아이템이 뭐에요?'라는 말이 돌아오곤 하는데 '아직 고민 중이고 그게 걱정의 포인트에요'라는 말로 심심하게 대화를 끝내곤 한다. 하버드 이상형 월드컵에서 시작한 페이스북처럼 비전에 의거하지 않고 세계 최대의 기업이 된 케이스도 있겠다만(메타는 아니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비전의 존재 유무는 사업의 지속 가능성과 업무 몰입도에 분명 지대한 영향을 미칠 테다. 일론 머스크가 비전 없이 테슬라와 스페이스X를 운영했다면 2008년의 위기를 어떻게 버텨냈겠는가? 고객이 원하는 아이템이 최고이기에 lean한 수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지만 어쨌건 내 열정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문제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항상 감사한 분이 생일에 선물해 준 <인사이드 아웃 2> 3개년 Q&A 다이어리를 매일매일 쓰고 있는데, 이런 류의 다이어리가 가장 좋은 점은 나의 철학에 시간의 차원을 더해 생각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일부러 인턴 기간의 삼 분의 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 2025년의 초입에 가지고 있는 생각을 주욱 펼쳐 두었다. 몇 년 후에 보면 이불킥할 글임을 알고 있지만 구태여 길게 늘이는 이유는 오로지 그것뿐이다.


작가의 말

이번 달에야말로 문화의 날에 참여할 수 있는 줄 알았건만 지난 달은 크리스마스 이번 달은 설 연휴로 두 달 연속 스킵하니 인턴 삼 개월 동안 문화의 날을 한 번밖에 즐길 수 없다는 사실에 눈물을 삼킨다. 퍼스널컬러 진단도 받고 크로스핏도 하고 밥도 먹고 사우나도 가고 마 다하고 싶었는데...

(* 문화의 날 : 매주 마지막 수요일에 진행되는 당근의 사내 복지로, 회사에서 인당 10만원씩 지급하고 원래 아는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끼리 삼삼오오 모여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기며 신뢰를 쌓는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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