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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회고 (1) : 올해의 생각
1. 일단 슛을 던지고 보기
2025년을 정의하는 단일한 생각이자,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큰 기질적 간극은 생각건대 리스크 테이킹에 놓여 있다. 이는 무엇보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과 도전을 할 때의 본능적 망설임을 조금만 벗어던지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을 깨달은 탓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고, 뭐라도 하면 뭐라도 일어날 가능성은 있다. 2x2 Matrix로 봤을 때 움직이는 것이 논리적으로 우월전략임을 모르는 바보 천치는 없겠다만 귀납으로써 체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야투율 깎이는 것 걱정할 시간에 슛을 한 번이라도 더 던지고 슛의 정확도를 높이는 편이 낫다.
그리고 이는 연역적으로도 진실이다. 나는 종종 '지구에 태어난 인간이라면 응당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야 한다'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기적 유전자>가 지닌 미덕이야 수없이 다양하지만 이 주제의 맥락에서 한 가지를 이야기하자면 인간(나)의 행동과 기질 중 (지금과는 다른) 과거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특징을 얼마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겠다. 다시 말해 과거의 환경과 현재의 환경 사이의 차이로 인해 수만 년 전 인류의 진화가 남긴 유산은 대부분 outdated 되었고, 그중 하나가 리스크에 대한 회피다 - 그 시절 리스크를 온몸으로 맞았다가는 정말로 매머드의 뿔에 몸이 뚫릴 수도 있었기에! 그러나 21세기 사회에서 제아무리 리스크 테이킹을 한들 죽기야 하겠는가? 일론 머스크도 멀쩡히 살아있다.
2. 인간관계의 비대칭성 레버리지
인간관계의 비대칭성 또한 올해 가장 많이 생각했던 동시에 가장 많은 도움을 받았던 개념이다. 외람된 이야기로 상반기에 이를 주제로 한 별도의 글을 쓰기도 했는데 - https://blog.naver.com/kilo_hotel_juliet/223863925623 -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내가 올해 쓴 글 중에는 가장 잘 쓴 것 같다. 여하튼 저 글에서도 풀어놓았듯 인간관계의 비대칭성은 모든 개개인이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이질적이기에 발생하고 이건 정말이지 인간관계의 꽃이다.
이런 사고실험을 해볼 수 있겠다. 젠슨 황 아저씨가 나를 끔찍이 아낀다고 가정했을 때, 그가 나한테 10억 주는 건 껌값일 것이고 그 아저씨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을 테다. 엔비디아 지분을 0.00002% 정도 팔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내가 10억을 받는 건 내 인생에 대단히 큰 영향을 준다. 그 돈이 있으면 당장 펀딩 걱정에서도 해방되고, 오히려 초기 자금으로 투입하여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이 다양해지게 되며, 개인의 런웨이도 현저히 길어져 지금보다 훨씬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제로섬 게임을 가정했을 때 Giver에게 부과되는 음의 절댓값은 한없이 축소되고 Taker가 획득하는 양의 절댓값은 한없이 확대되는 지점이 인간관계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존재한다. 의도적으로 제로섬 게임에 해당하는 금전을 예시로 들었으나 이것이 이를테면 인터뷰, 멘토링, 재능기부 등 구조적으로 제로섬이 아닐 수 있는 영역이라면 참가자 모두가 플러스 점수를 얻고 돌아가는 상황도 쉬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Taker로서 매번 Giver의 고혈을 빠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다. 유별나게 Giver 혹은 유별나게 Taker로서 태어나지 않은 이상 인간의 전 생애에 걸쳐 Giver로서 참여하는 관계의 횟수와 Taker로서 참여하는 관계의 횟수는 비슷할 것이고 동일인과의 관계에서 개별 시행은 때때로 Giver-Taker 구도가 역전된 채로 반복되기에 우월전략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아마도 조금 더 관대한 팃포탯에 가까울 것이다. 단일한 ESS가 없는 복잡계에서 자신만의 전략을 잘 찾아야 한다.
3. 똑똑하게 보임에 집착하지 않기
이십수 년을 살면서 나보다 인정욕구 강한 사람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스타 스토리로 온몸 비틀며 인정을 갈구하는 몇몇 이들의 꼴이 같잖기도 하고 원체 기질적으로 나 자신을 내비치길 좋아하지는 않는 탓에 스스로 지닌 인정욕구의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숨겨지고 있긴 하나 여하튼 나는 그런 유의 사람이다. 모든 기질이 그렇듯 일장일단이 있는데, 그래도 학업의 영역에서 나름의 성취를 거둔 데에는 인정욕구가 큰 역할을 했다 보기에 마냥 밉지만은 않다. 밉다고 해서 떨쳐내고 살아갈 수 있는 종류의 것도 아니거니와.
그런데 사업을 처음 한답시고 한창 나대던 시기 인정욕구가 얼마간 독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는데, 누군가 나를 똑똑하다고 인정해 주지 않음을 정말이지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괜히 '자기는 얼마나 똑똑하다고' 식의 억하심정도 품어보고, 똑똑하게 보이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많이도 생각하고 연습했다. 당시에는 어떻게 하면 똑똑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하면 똑똑해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아 부끄럽기 그지없다.
최근에야 강박을 내려놓았으니 어차피 똑똑함은 본질적으로 성과에 의해 사후 측정될 수밖에는 없음을 깨달은 탓이다. 언론에 IQ 180이니 200이니 아이비리그를 몇 년 일찍 들어가고 미적분을 몇 살에 깨우쳤고 아무리 떠들어댄다 한들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정주영 회장님의 똑똑함 발끝에도 못 닿는다. 토스 이승건 대표의 Carrying Capacity 영상을 참 좋아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그게 유의미한 이유,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의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유는 결국 그 사람의 IQ가 높고 놀라운 인사이트를 지녀서가 아니라(실제로 그러하긴 하겠지만) 심플하게 토스가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트업이자 10조 기업이기 때문이다. 충분한 성과를 낸다면 인정욕구는 오히려 부담스럽게 느껴질 만큼 해갈될 것이다.
4. 네트워킹은 과대평가되었다
처음 창업 팀이라 불릴 만한 것을 꾸리고 사업이라 불릴 만한 것을 시작했던 것이 4월이었는데 그 후로 한 세 달간은 갈 수 있는 오만가지 네트워킹 행사란 행사는 죄다 참석했던 것 같다. 창업 동아리 소속으로 활동을 하기도 했거니와 소위 인맥을 쌓고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무어랄까 창업가 타이틀을 건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의, 다시 말해 신뢰 및 친분이 모종의 역치를 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절대적 효과의 관점에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은 2번과 같은 맥락에서 여전하다.
그러나 효율의 관점에서 과연 소위 네트워킹이 ROI가 나오는 짓거리냐에 대해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내가 사업하려는 고객의 문화와 나 자신이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이라면 유의미한 ROI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쩡한 대학 나와 된장찌개 먹으며 한국에서 사업하는 절대다수의 한국인 창업가들은 일반적으로 그러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고, 수십수백 명이 삼삼오오 짝지어 실은 관심도 없는 서로의 아이템 이야기를 쏟아내는 네트워킹에서 투자에 상응하는 리턴을 얻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피상적인 친분과 품앗이 인정,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과 어울리는 경험 등이 주는 야릇한 만족감을 반드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내가 간 네트워킹 행사들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인재 밀도도 구렸고. 차라리 1:1 혹은 소수 정예로 스코프를 좁혀 목적을 확실히 한 채 만난다면 승산이 있겠다. 인생이 무한하거나 세상이 개인보다 느리게 변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고서야 떼거지 네트워킹 따위에 쏟을 시간이 없다.
5. 조언도 대부분 무용하다, 그러나...
4번과 같은 맥락인데, 창업 씬에서 조언의 중요성은 지나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상기했듯 금년 4월부터 6월 대표병 및 스타트업병 1기였던 기간에 링크드인, 학회 선배, 행사에서 만난 VC 심사역 등 오만가지 random한 네트워크의 동아줄을 부여잡고 바짓가랑이 붙들어매며 조언을 구했다. 이 시장 어때요? 이 제품이 해당 시장에서의 최적화된 폼 팩터일까요? 글로벌을 가야 할까요? 가격은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유의미한 대답을 들었을 리 만무하다. 그도 당연한 것이 우선 그들은 1)해당 도메인에서의 유의미한 경험을 지니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고, 2)나보다 해당 시장/고객/문제에 대한 절대적 고민의 시간이 부족했을 확률이 매우 높고, 3)나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답변에 필요한 수준에 미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은 탓이다. 그러니까 i)해당 도메인에서의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지닌 이에게 domain-specific한 조언을 구하거나 ii)창업 씬 전반에서 잔뼈가 굵고 풍부한 경험과 높은 지능을 지닌 이에게 general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유의미한 두 가지 경우의 수일 텐데 i)의 경우 조언이 아닌 인터뷰에 가까울 것이며(인터뷰는 정말이지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ii)의 경우 폴 그레이엄 등 구루의 에세이와 아티클을 온라인에서 찾아 읽거나 컨텍스트가 잘 정제되어 주입된 LLM을 찾는 편이 낫다.
그리고 조언이라는 단어에는 기본적으로 비판의 뉘앙스가 내포되어 있는데(모든 것을 긍정한다면 그것은 조언이 아닌 응원이다), 내 생각에 정말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비판은 독이다. 애초에 행위가 탈각된 비판은 세상에서 제일 쉽고 무의미한 일이고, 무엇보다 사업 성공과 가장 상관관계가 높은 팩터 중 하나는 파운더(들) 개인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탓인데, 비판을 걸러 들어야 함을 머리로는 이해함에도 창업가는 인간이기에 어찌 그것이 개인의 의지를 조금이라도 꺾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주영 회장님이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시늉이라도 했더라면 지금의 SK하이닉스와 현대자동차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특성과 맥락 & 산업에 대한 이해 & 창업 씬에서의 general한 경험 모두가 반영되는 교집합에서 그들의 행로와 나의 행로가 이따금씩 중첩됨으로써 찾아오는 마법 같은 조언의 순간들이 존재함을 느낀다. 이를테면 지난달 만나 뵌 프라이머의 P 파트너님이 기억에 남는데, 우리 팀의 IR 피칭을 두어 번 듣고 데모데이 행사 전후로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눈 것이 전부였음에도 그가 업의 특성, 자신의 경험, 우리 팀의 특성 모든 것을 고려하여 정성스레 해준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찔렀고 정말로 이후의 사업 개발 및 전략 수립에 대단히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것도 결국 트레이드오프의 문제다. 지나치게 남 말을 들어도 망하고 지나치게 남 말을 안 들어도 망하는데, 요지는 무릇 창업가라면 세상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남 말을 덜 들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는 이야기다.
비스름한 맥락에서 나 또한 타인에게 조언하는 일을 삼가고 '그/그녀도 다 생각이 있겠지'라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이유는 정말 다양한데,
a. 애초에 조언을 할 만한 성과를 일궈내거나 그에 상응하는 위치에 오르지도 못했을뿐더러,
b. 구태여 조언이라는 에너지를 들여가며 삶과 일의 행로를 바꿔놓고자 할 만큼 사랑하는 이들도 많지 않으며,
c. 나는 비판, 태클, 평가에 있어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 최고 수준으로 뛰어나지만 이것은 기실 아무것도 바꿔놓을 수 없는 다시 말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인 탓이며,
d.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행동이 누군가의 인생 행로에 영향을 줌이 의도의 선함과 무관하게 대단한 부담으로 다가옴을 깨달은 탓이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건만...
6. 향상심
일에서의 성공이 단일한 요소에 의해 결정되리라 생각지 않는다. 운과 실력 모두가 중요함은 자명한 이야기고, 그렇다면 실력의 바운더리에 어떤 것들이 포함되냐가 관건인데, 이전에는 마크 저커버그가 Raw Intelligence를 언급했던 맥락에서 (특히 Gen AI의 시대에는 더더욱) 지능이 실력과 동의어에 가까우리라고 생각했었다. 여전히 성공에 있어 지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함은 변치 않고 재론의 여지가 추호도 없으나, 끈기, 추진력, 네트워크 등 곱연산의 일부로서 포함될 만한 변수가 몇 가지 더 있음을 느끼며 생각건대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향상심이다.
무슨 일을 하든 0과 90의 차이만큼 90과 99, 99와 100의 차이가 크기에 90 내지는 99에서 만족하는 사람과 100이 될 때까지 만족하지 못하고 기어이 100을 해내는 사람 사이에는 정말이지 하늘과 땅 차이가 존재한다. 내가 최고 수준으로 타고나지 못해 안타까운 기질 내지는 능력은 첫째가 지적 순발력이고 둘째가 바로 향상심인데, 다행히도 보완할 방법이 어렵지만 없지는 않은 것 같다. 뻔한 이야기지만 끊임없이 본질로 회귀하며 목적을 재고하고 남들보다 짧은 텀으로 향상을 추구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정주영 회장님과 일론 머스크의 지혜를 내년에도 가슴에 품고 살아가기.
7. 미움 말고 사랑으로
머리가 커져 성인이 된 후에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미워했었고 몇몇은 지금도 구태여 떠올리지 않을 뿐 미움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을 테다. 한 술 더 떠 속으로 그/그녀의 상을 마음껏 왜곡 조롱하고 거진 악마화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하나 이유를 따져보자면 디테일이야 각양각색이겠지만 한 단계의 Abstraction을 거쳐 말하자면 결국 내가 원하고 기대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대우해 주지 않은 탓으로 귀결되지 않나 싶다. 그것이 인정의 부족이든, 존중의 부족이든, 이해의 부족이든, 사랑의 부족이든... 직접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경우에도 짜쳐 보이고 싫어질 때야 많지만 미워지기란 어려우니, 미움이란 반의어 개념이 그러하듯 근본적으로 친근한 관계이나 어느 한 군데가 삐걱댈 때 피어오르는 듯하다.
그런데 미움만큼 유약한 감정도 없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삐걱대던 톱니가 모종의 요인에 의해 제자리를 찾든, 삐걱댐이 사실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든, 삐걱댐을 벌충할 만한 호의를 상대가 먼저 보이든 간에 정말이지 별것도 아닌 계기로 미움이 눈 녹듯 사그라들고 마음속 악마가 천사로 돌변하는 꼬락서니를 수차례 경험했다. 감정 기복이야 필연적이라지만 이건 정말이지 경험할 필요가 없는 롤러코스터라 나 자신의 한심함을 돌아보게 되었고, 덕분에 조금은 미움의 지겨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듯하다. 무엇보다 미움으로 가슴 한편을 가득 채워 살아가기에 인생은 지나치게 짧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인생의 유한함과 시간의 흘러감을 근심하는 양질의 사랑을 하는 편이 낫다.
8. 루틴은 곧 갑옷
혹자가 보면 지독하다고 말할 만한 루틴을 석 달 좀 넘게 고수하고 있는데(연말에 장염까지 겹쳐 최근에는 일부 내려놓았지만) 정말로 만족스럽다. 블로그에도 몇 번 썼듯 자기 통제력도 원체 강하고 루틴한 삶으로부터 기인하는 지루함과 지난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역치도 낮지 않은 탓에 크게 무리하지 않고도 루틴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유지력은 내가 가진 비대칭 전력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설령 내게 상기한 슈퍼파워가 없어 루틴을 지키는 것이 제법 힘들게 느껴졌다 할지라도 이를 유지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했을 성싶은데, 루틴이 단순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제공함을 체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루틴은 말하자면 갑옷과도 같다. 합쳐서 하루에 한 시간을 투자하는 운동과 명상은 내 정신으로 하여금 그날의 일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스트레스와 분노, 피로와 지루함 등 각종 부정적 감정을 다소간 필터링한 후 인식하게끔 만들어준다. 정말로 부정적 감정의 요인을 정확히 지목한 후 그로부터 초연해지는 경험을 몇 차례 하니, 감정의 객관화 레벨이 현저히 올라감을 느낀다. 더불어 수면과 식이의 조절은 역설적으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루틴으로부터의 이탈로 인한 피로를 줄여준다. 매번 엉망으로 먹고 엉망으로 자다가(이를테면 당근 다니던 시절) 하루 4시간을 잤을 때와, 7시간-7시간 반의 수면과 식단을 병행하다가 하루 4시간을 잤을 때 컨디션 차이가 대단히 크다.
9. 그러나 때로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느끼기
8번과 반대의 맥락이긴 하나, 올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인식 중 하나는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루틴으로부터 벗어나야지만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삶의 특이적인 효용이 존재한다는 점이겠다. 단순히 일을 잘하고자 한다면 감각적 삶 따위 사치일 수 있겠다만 삶을 잘 살고자 한다면 그 어떤 의미에서든 삶을 잘 느낄 필요가 있다.
물론 반복되는 일상을 감각하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나, 이것은 난도가 꽤나 높은 일이다. 가장 쉽게 감각적 삶에 필요한 연료를 얻어올 수 있는 상황은 바로 여행이다. 김영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행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라 '오직 현재만이 중요하고 의미를 가지게 된다'. 7월의 치앙마이 여행에서 재즈바를 방문하며 그리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기억에 남을 대화를 나누며 이를 절감했다. 픽사의 걸작 <소울>의 주인공인 '조'가 나뭇잎에 비치는 햇빛을 보며 그러했듯 내년에는 여행뿐만 아니라 일상에서의 감각 또한 재발견할 수 있기를. <그리스인 조르바>로 비유하자면 내가 조르바보다 화자에 가까운 사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때로는 조르바처럼 춤을 추고 럼주를 마셔야지만 삶이 더욱 맛깔나게 변한다.
10. 원만함은 업무의 적
소위 일이라고 하는 것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하튼 수많은 조직 내/외의 소통을 포함하는데, n회의 소통이 발생하고 각 소통마다 2가지의 방식이 있다면 일을 처리하는 방법만 2^n가지가 된다. 소통의 횟수가 10회만 되어도 1,000가지 이상의 방법이 생기고, 20회가 되면 100만 가지를 넘어서니, 일을 처리할 때에는 자고로 일관적인 기준이라 할 만한 것이 반드시 필요한 셈이다.
대부분의 상황은 정답을 명확히 보여주기에 그다지 깊은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으나, 분명 헷갈리는 상황은 찾아온다. 문제없이 의도한 기준치를 넘겼으나 개선의 여지가 눈에 띄는 상황이 대표적일 텐데, 일반화해보자면 1)팀원들을 고생시켜 불확실한 업사이드를 추구하거나 2)일을 벌이지 않고 원만하게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놓이는 일반적인 선택지이다.
기댓값이 제로가 아니고서야 정답은 1)임을 이제야 깨달았고 나는 이것을 원만함의 함정이라 칭하고 싶다. 소위 사회 초년생이라 불리는, 커리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일의 영역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원만함의 함정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적어도 일 년 반 이상을 함정에 빠져 있었음에도 빠져 있었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지는 일을 할 적에 동료들과의 원만함을 덜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원만함을 아예 고려하지 말아야 하며, 조금 더 급진적인 생각을 공유하자면 원만함은 일의 성과와 음의 상관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나치게 비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이상 덜 원만한 방향으로 일을 처리할수록 크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 작금의 생각이다.
11. 호르몬(특히 도파민)이 전부
올 한 해는 좋은 책이 선사한 레슨을 => 이후 우연한 계기에 의해 체험하고 그때는 몰랐던 의미를 체화할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들이 제법 있었다. 역시 올 한 해 가장 인상적인 책이었던 <명상록>이나 <그리스인 조르바>에 대해서도 그런 상황들이 있었는데, 이러한 관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던 책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다. 심사관들이 식사를 하기 전 가석방 결정을 할 때와 식사를 한 후 가석방 결정을 할 때 죄수들의 석방률에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는 예시를 보며 신기하다, 인간의 의사결정과 직관이라는 것은 정말로 취약하구나,라는 식의 가벼운 생각만을 하고 있었는데, 계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올해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의 성패와 일의 성과에 신체 상태와 호르몬 레벨이 상상 이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보다 일반화된 결론에 다다라 <생각에 관한 생각> 속 실험 결과를 비로소 체화했다.
과학적으로 최적화된 방법인지의 여부는 잘 모르겠다만 매일 똑같은 아침과 점심을 먹고, 잠에서 깬 후 30분 / 자기 전 30분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등의 방법을 시도하며 호르몬 레벨 관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를 의도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일종의 자의식을 갖는 데에도 정신적 리소스를 많이 투자하는 편인데, 이때 인식이라 함은 두 층위로 구분된다. 첫째는 내 도파민 레벨이 지금 어느 정도 상태에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며, 둘째는 도파민 레벨에 따라 일에서 얻는 만족과 일에의 의지가 어느 정도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인식. 특히 도파민 레벨에 따라 일의 성과가 천지차이임을 체감했는데, 6번의 맥락에서 특히 도파민이 향상심에 직결되는 탓이다. 하는 일을 즐겨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지사.
12.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
연애와 인간관계에도 적용되는 말이고 애초에 그러한 맥락에서 쓰인 노래 가사라지만 일에서도 정확히 마찬가지다. 첫 아이템을 접는 과정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꼈는데, 심지어 구속력을 가진 계약을 맺고 돈을 받는 상황도 아니었건만 PoC를 진행하던 상대에게 피벗을 고지하기가 어찌나 어렵던지. 우리 팀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VC 심사역 혹은 각계각층의 지인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작보다 끝맺음의 난도가 현저히 높고 이해관계자의 수가 늘어날수록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이왕 망할 거면 빨리 접거나 망하는 편이 훨씬 나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함의 어려움이 두려워 시작을 망설이면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놓이는 불편한 진실들.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고, 그래서 확신이 중요하다.
13. 부지런히 생각하기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들킬 위험이 있기에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나를 속이는 것은 들킬 위험이 없고 그리하여 몇 배는 쉽기에 훨씬 더 위험한 일이다. 물론 인사이트와 배경지식의 절대적 양이 부족한 초기의 생각은 항상 나이브할 수밖에 없고, 이는 악덕이 아니다. 진정한 악덕은 강렬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초기의 생각으로 부딪치고 깨지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것이다. 몸이 게을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이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 나는 마음만 먹으면 말과 생각을 구조화해서 번지르르하게 꾸며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탓에 이를 특히나 경계해야 한다. 지금도 이 함정에 빠져 있다.
14.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배운 점을 즉시 다회 활용해 체화하지 않는 한 기록되지 않은 인사이트는 휘발되고 따라서 무의미하다. 당근 인턴 일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기록을 남겼는데, 내년에도 어떤 형태로든 지속하기로 다짐. 이 글 또한 당연하게도 기록을 통한 성장 도모의 일환이다.
15. 감사하기
내 생각에 미안함은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는데(속된 말로 버릇이 잘못 든다), 감사함에 대해서라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올해를 멀쩡히 살아내는 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는지. 그리하여 9월부터 시작한 데일리 루틴에 감사일기를 포함했건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작성한 날은 손에 꼽는다. 내년에는 인센티브 구조를 제대로 구축해서 매일의 루틴에 적극 참여해야 할 텐데. 여하튼 새해에 개인적으로 안부 인사를 돌리기야 하겠지만 그들의 목록을 리스트업할 겸, 감사할 일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새해에 인사를 따로 하지는 못할 분들에 대한 감사를 표할 겸, 겸사겸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감사의 말을 짧게 적어보기로.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성공한 창업가이자 성공한 아버지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 양립하기가 쉽지 않을 것쯤이야 예상하고 있지만 둘 중 무엇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조금 더 흔한 말로 추상화하자면 일과 연애(사랑). 일의 영역에서는 3월에 공동창업자 H를 만났고 연애의 영역에서는 11월에 여자친구 E를 만났다. 둘 모두 블로그 서로이웃인 탓에 다소 낯간지럽게 느껴지나 둘은 올해 나의 삶에서 가족을 제외하면 그들을 배제한 가능세계를 상상할 수 없는(혹은 상상하기 싫은) 유이한 사람이다. 어쨌건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헤어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올해 처음 만난 이들과의 관계를 블로그에 소위 박제하는 것이 섣부르게 비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나, 만에 하나 그렇다 한들 올 한 해 내 삶에 그들이 기여한 바에 대한 감사가 빛바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흥미롭게도 12월을 보내며 각각의 관계 사이에 다소 중첩되는 지점들이 있음을, 그래서 둘 중 하나의 관계를 더 잘 managing하는 방법을 깨달음으로써 이룩한 성장이 다른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고 나아가 더 발전시키는 것, 나도 그들에게 더 좋은/긍정적인/유용한/유능한/흥미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2026년의 주요한 목표다.
따지고 보면 둘 모두를 서울대학교 학생 창업 동아리인 SNUSV를 통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처음 만났다. 인재 밀도와 커리큘럼에 대한 불만 같은 거 싹 다 차치하고 보더라도 SNUSV는 정말이지 올 한 해(특히 상반기)를 정의했다고 말할 만한 감사한 조직이다. 엔쇼와 SNUSV에 몸담았기에 관악 땅에서 허비한 소중한 n년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만은 않을 수 있었다. 비록 이제는 함께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넉 달을 동고동락했던 D, 데스커 공간을 함께 쓰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기도 했고 실없는 이야기도 참 많이 했던 S와 Y, 올 한 해 중요한 방점을 찍은 소중한 인연들과의 다리를 놔주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소중한 인연이기도 한 G님, 최근 사업 개발 과정에서 크나큰 도움을 주었던 S누나, SNUSV라는 조직이 내게 준 좋은 경험에 가장 큰 지분을 가진 S형, 올해 본 가장 Brilliant한 친구들로 고맙게도 나를 지지해 주어 이야기할 때마다 안정을 얻는 S와 Y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외에도 별도로 언급하지는 못했으나 SNUSV를 통해 만난 고마운 인연들이 많다.
물론 SNUSV에 들어가 사업의 첫 삽을 펐으나 부족함이 많았고(지금은 더 많고) 따라서 많은 주변인의 지식과 지혜를 찾아 헤맸다. 조언은 대부분 무용하다 했건만 2025년의 끊임없는 방황에 있어 중요한 길라잡이가 되어준 감사한 분들이 계신다. 선배님들의 도움이 먼저 떠오르는데, 소중한 시간을 아껴준 두 분께 특별히 감사하다. 학회 선배님으로 컨설팅과 창업의 교집합에 계신 J 선배님은 AI 컨설팅 펌을 내가 할 수 없는 이유를 완벽하게 납득시켜 주셨고, 올해 초에 이분과 식사 서너 번은 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못 믿었을 S 선배님은 크리에이터 시장 내 B2B 사업의 어려움을 깨닫게 해주시는 한편 지금의 B2C 사업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레퍼런스로서 몸소 힘을 실어 주셨다. 초반 PoC 단계에서의 호성적은 S 선배님의 공이 크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 외에도 AI 컨설팅 펌과 관련된 자문을 위해 찾아뵈었던 ex-컨설팅 선배님들, IR 및 사업 아이디어와 관련된 피드백을 듣기 위해 찾아뵈었던 AC/VC 심사역 선배님들, 이해관계에 의거한 일이었겠으나 우리 팀을 좋게 봐주시고 응원 내지는 조언을 해주셨던 J 심사역님, P 파트너님, T 대표님, S 파트너님, Sherpa의 형태를 구체화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한 B2B 회사의 종사자 분들께 감사를 표하고 싶다. 선배는 아니지만 AI 컨설팅 펌 검증 과정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던, 컨설팅 펌의 오퍼리이거나 RA였던 엔쇼 친구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전략 컨설팅이라는 업태를 혐오하고 당장 사라지는 편이 인류 문명의 관점에서 이롭다고 생각하지만, 이와 무관하게 그들이 진심으로 어떤 의미에서든 잘 되길 바란다. 그 외에 지면의 한계로 일일이 이름을 거론하지는 못했으나, 스쳐 지나가며 나눈 짧은 대화나 커피 한 잔에서 큰 배움을 얻은 분들이 많다. 그들의 호의에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사업의 영역 바깥에서도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이 관계 맺었다. 먼저 엄밀히 말하자면 작년에 근무를 시작했으나 올해 초 석 달 정도를 몸담았던 당근알바 팀이 떠오르는데, 다시 돌아봐도 올해 가장 힘들었던 시기. 모두에게 감사하지는 않고 외려 감사한 사람들이 더 적지만, 인턴 시기가 겹쳤던 C, J, S에게는 특히 고맙다. 그들이 없었다면 제정신으로 끝내기 어려웠을 텐데, 퇴사 이후에도 종종 얼굴 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들 모두가 잘 풀려 어엿한 정규직이 된 것이 다행. 다른 팀 인턴이었지만 업무의 측면에서 가장 많이 소통했던 PR팀 L이나 마케팅팀의 W와 R도 참 감사했는데 다들 뭐하고 지내실런지 문득 궁금하다.
또한 원체 대충 다녀 기억이 옅어져 말하자면 전생 같지만 생각해 보니까 올해 1학기에 학교를 다녔었다. 졸업을 하냐 마냐 기로에 놓여 있었기에 중요한 학기였는데, 사업한답시고 수업에 가지 못할 때도 과제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할 때도 많았건만 그런 나를 끌고 밀어줘 무사히 졸업할 수 있게 도와준 감사한 인연들이 있었다. 가장 감사한 것은 하시설 플젝 군말 없이 캐리해 준 Y 후배인데 그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한 학기 더 다녔을 것이라, 금전적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 외에 (올해 처음 만난 인연은 아니지만) 교양 출튀 두어 번 도와준 Y, 개판으로 쓴 졸논 통과시켜준 S 교수님, 왜인지 모르게 나를 물심양면으로 잘 챙겨줬던 벤경 수업의 H형, 철학개론 조별 과제 도맡아서 해준 팀원들에게도 적잖이 고맙다.
올해 처음 만난 인연들에 대한 기억이 짙을 수밖에 없고 관계 초반 만남의 밀도/빈도가 높아 기억이 선명할 수밖에 없지만 n년째 만나고 있는 보다 편안한 인연들에 대한 감사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도대체 내게 왜 이리 잘해주나 싶을 정도로 잘해주는 H형의 이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도 나이가 들어 누군가에게 그런 선배이자 형이 될 수 있었으면. 그 외에도 몇몇 기억의 잔상이 짙은데, Y, K에게 자취방에서 스테이크를 구워준 일, C와 알찜에 소주 두 병씩 마시고 헤어졌던 금요일 밤, 가까운 곳으로 이사한 T형의 집들이,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 Y의 생일 서프라이즈를 준비한 일, S, J와 엽떡에 허니콤보 먹으며 롤드컵 결승을 본 날 등이 유난히 편안했던 순간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이들은 말하자면 예측 가능해질만큼 오래 보았기에 누구도 나와 나의 감정을 해칠 것 같지 않고 그래서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가족 - 부모님과 동생 - 에게 올해도 감사하다. 시기가 잘 맞아 가족끼리 한 해에 해외여행을 두 번 가는 호사를 누렸다. 특히 연초의 후쿠오카 여행이 감동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좋았는데 힘든 시기를 무탈히 버틸 수 있었던, <인사이드 아웃> 식으로 말하자면 올해의 핵심 기억. 세상에는 별의별 가족이 다 있고, 때문에 내가 하는 일을 지지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원을 올해도 해주신 우리 가족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올해도 커다란 부침 없이 건강히 그리고 함께 거진 삼십 년간을 살아주신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하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머리에서 말한 것과 같이 대단치 않고 모나지 않은 가정임은 대단한 축복이다. 아무런 부담 없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혹은 사업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는 금/은수저는 아니라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좋고 나를 이렇게 낳고 키워주신 부모님께 따라서 올해도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