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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11월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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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자서전#창업
목차

테토남 정주영

11월에도 몇 권의 책을 병렬적으로 독서했는데 그중 가장 큰 덩어리를 차지하며 + 단연 기억에 남는 책은 돌아가신 정주영 회장님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 내가 살아온 이야기>였다. (결과적으로 이후의 인생을 규정하는 독서가 되었던)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전기 이후로 다양한 창업가들 혹은 회사의 일생을 다룬 책을 읽었는데 그중 단연 최고다. 모티베이션을 얻고자 책을 손에 들었고 실제로 원했던 종류의 모티베이션을 차고 넘치게 얻어 가고 있는데, 그 기저에 있는 일화가 상상 이상으로 극적이라 예상치 못했던 감동을 얻어 가고 있다. 화재, 일제의 수탈, 625 발발 등 수도 없는 일련의 ‘억까’에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모습, 공기를 지켜 신뢰를 쌓기 위해 가족의 집을 팔아가면서까지 고령교 공사를 완수하는 불굴의 의지, 조선소도 없이 선박 계약을 수주하고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되찾은 일, 20세기 최대의 건설 역사라 불린 사우디 주베일 산업항의 공사 수주를 따내기 위해 산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등을 지켜보고 있자면, 가령 <유난한 도전>과 <크래프톤 웨이> 속에 등장하는 가장 인상적인 일화들조차 소꿉장난처럼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책을 읽고 주변인들에게 ‘정주영 회장님이야말로 비록 그런 용어가 없던 시대에 태어나셨지만 요샛말로 역사상 최고의 테토남이다’ 라는 투의 이야기를 몇 번 했었다. 그가 보여주는 야수성과 과감함, 리더십과 카리스마에 감화한 탓인데, 한편으로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감탄의 이면에 묘한 패배감과 부끄러움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는 내가 사업한답시고 헤매온 지난 여덟 달 보여준 '에겐'력에서 기인하는데,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 요새의 대한민국 그리고 세상이 지나치게 에겐화되어가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기저에 놓인 가장 결정적인 두 가지 이유는 1)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2)인스타그램 시대에 접어들어 타인의 삶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기가 한층 쉬워졌다는 점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에 따라 리스크를 회피하고 겁쟁이가 되는 것이 정답인 시대에 이르렀고 이는 취준 기간의 증가, 사회 진입 시기와 결혼 시기의 지연, 출산율 감소 등 오만가지 Risk-averse한 후행 지표로 귀결되었다. 작금의 시대정신은 틀림없이 유약함이다.

유약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스타트업 씬 또한 매크로 트렌드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는 노릇, 빠른 속도의 에겐화가 진행되고 있다. 오늘날 뭇 창업가들이 스타트업의 바이블이라 칭송해 마지않는 린 스타트업과 프리토타이핑 방법론이야말로 이러한 스타트업 씬의 에겐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방법론의 논리적 정합성에야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나는 이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실패의 확률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지 성공의 크기를 최대화하는 방법은 아니라고 본다. 일론 머스크가 화성에 가기 위해 로켓을 만들 때, 젠슨 황이 알렉스넷의 등장 이후 CUDA에 엔비디아의 명운을 걸 때,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 그려진 지폐 한 장으로 차관을 도입해 허허벌판에 조선소를 지을 때 프리토타이핑 따위를 했던가? 따지고 보면 YC의 가장 성공적인 포트폴리오사 Airbnb의 브라이언 체스키가 보여준 Founder Mode, 그리고 PM을 없애고 디자이너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 본격적인 Gen AI 시대가 오기 전 그들이 보여준 변화는 역설적으로 YC가 이야기하는 위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다. (여담이지만 YC의 수장이었으며 상기한 방법론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샘 알트만은 척 봐도 에겐남같긴 하다 - Gemini 3.0 나오고 울었을 듯?)

더불어 본인 위에 기업이 있고 기업 위에 나라가 있다는 양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묻어 나오는 그의 애국심은 어딘지 모르게 심금을 울리는 지점이 있다. 언젠가 유튜브 쇼츠를 넘기던 중 제프 베조스가 소니의 창업자 모리타 아키오를 두고 ‘모리타상의 목표는 단순히 기업의 성공 혹은 개인의 안위가 아니라, 일본이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나라임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기업 이상의 가치에 대한 추구가 필요하다’라는 투의 칭찬을 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것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최근의 예시로는 (그렇게 안 생겼으면서) 누구보다 미국적 가치를 숭상하는 알렉스 카프도 떠오르고… 물론 그렇다 한들 델라웨어 C-Corp를 세우고 미국 시장에 담대하게 출사표를 내미는 전 세계의 젊은 창업가들을 비판할 이유는 하등 존재하지 않는다. GPS를 이용한 위치기반 서비스가 핵심이기에 소위 ‘로컬 서비스’가 득세할 수 있었던 모바일 패러다임과 다르게, AI 패러다임은 본질적으로 국경이 없을뿐더러 AI가 문화와 언어를 번역하며 메타적으로 장벽을 낮추는 데 기여하기에 이것이 ROI와 기댓값의 측면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지 중 하나인 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의 소속감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라, 그들이 만들어 낸 가치의 크기와 이룩한 성공의 크기를 차치하고서라도 나는 센드버드, 몰로코, 눔보다는 삼성, 현대, 삼양의 길을 따르고 싶다.

여담이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드는 생각이 정주영 회장님 그냥 코리안 일론 머스크다. 일론 머스크가 늦게 태어났으니 그가 사우스 아프리칸 정주영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지도. 둘 모두 이름을 날린 주요 사업 분야가 중공업 쪽인 데다가 기질적 유사성까지 겹쳐 더욱 그렇게 보이는 듯하다. 이를테면 정주영 회장은 현대건설 시절 시멘트 공급책이 막혀 시장에 시멘트의 씨가 마르자 다른 발주처를 찾는 대신 각종 규제에도 불구 석회석 광산을 매입하여 공급로를 스스로 개척함으로써 비용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잡았는데, 이는 ‘First-Principle Thinking’으로 유명한 일론 머스크의 방식, 가령 스페이스X에서 로켓의 개별 부품 가격의 합이 전체 가격에 2%에 불과함을 파악하고 수직적 통합을 실행한 것과 구조적으로 정확히 동일하다. 이외에도 현장을 돌아다니며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업무 방식이라든지, 어려운 일이더라도 극단적으로 짧은 기한을 줌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광적인 습관이라든지, 지나치게 뛰어난 성과를 낸 탓에 나랏밥을 먹게 되었고 그 끝이 좋지만은 않았던 일화라든지 겹쳐 보이는 포인트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때 엄격함을 넘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정주영 회장과 일론 머스크의 지독한 방식이 성과를 내고 직원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그들 자신이 그 일을 해봤고, 그것도 뛰어나게 해봤기 때문이겠다. “이봐, 해보기나 했어?”라는 정주영 회장의 말이 아직까지도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해본’ 사람이기에 그렇다.

바이브 코딩 - 인지적 권력의 재분배

바야흐로 바이브 코딩의 시대가 도래했고 지금 IT 제품 만든다는 사람치고 클로드 코드나 커서 등 AI-Powered 개발 도구를 쓰지 않는 사람은 예상컨대 전무할 것이다. 이로 인해 팀이 충분히 커지지 않아 직접 코드를 만져야 하는 초기 스테이지의 IT 창업가들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던 이전 시대의 창업가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일해야만 한다. 이는 바이브 코딩의 워크플로우가 본질적으로 개인이 지니는 인지적 리소스의 100%를 활용할 수 없게끔 설계되었다는 사실로부터 기인한다. 예를 들어 마크 저커버그가 커리어 초기에 하루 14시간을 일했다고 치면, 그는 14시간 동안 100%의 인지적 리소스를 개발에 쏟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2005년의 마크 저커버그가 14시간 동안 만들었던 것을 2-3시간 내에 만들 수 있게 되었음에도 상기한 바이브 코딩의 구조적 한계로 인해 그 시간 동안 100%의 인지적 리소스를 개발에 쏟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단위 시간당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현저히 증가했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축복임에 틀림없다. 모두가 바이브 코딩을 하기에 경쟁의 강도의 측면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없겠다만, 이를테면 초기 버전의 Stripe를 만들기 위해 그 자신이 패트릭 콜리슨 급의 엔지니어가 될 필요가 없음은 그 어떠한 의미에서든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온전히 웃을 수 없는 것은 상기했듯 바이브 코딩이 상당한 수준의 컨텍스트 스위칭을 강요하는 탓이다. 생각건대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창업가/개발자들의 일과 삶에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데, 1)컨텍스트 스위칭이 뇌에 주는 부하로 인해 개별 컨텍스트에 온전히 집중했을 때에 비해 개별 컨텍스트에 해당하는 일을 완수했을 때의 퀄리티가 저하될 수 있으며, 2)집중을 방해함으로써 미하일 칙센트미하이가 이야기한 플로우 경험을 방해하여 행복도를 낮추고 번아웃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른바 컨텍스트 스위칭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발자와 창업가들 사이에 형성된 컨센서스는, 클로드 코드가 되었든 커서가 되었든 채팅창을 여러 개 띄워놓고 돌아가며 지시를 내리는 방식이다. 컨텍스트 A에게 지시를 내리고, 컨텍스트 A가 일하는 동안 컨텍스트 B에게 독립적인 지시를 내리고, 컨텍스트 A와 B가 일하는 동안 컨텍스트 C에게 독립적인 지시를 내리고, 효율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을 때까지 재귀적 확장이 반복된다. 이 또한 컨텍스트 스위칭을 요하긴 하나 여하튼 업무의 범위를 개발 안에 가둠으로써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허나 이 방법을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완전히 범용적이지만은 않은데, 개발 업무의 독립적인 Chunk화가 대부분의 경우에서 그다지 만만하지만은 않아 Chunk화에 쓰이는 리소스와 시간이 Chunk화하지 않고 컨텍스트를 일원화하여 진행했을 때의 추가 리소스와 시간을 상회하는 경우도 제법 많은 탓이다.

링크드인 등에서 통용되는 글쓰기의 규칙과 매너에 따르면 이쯤에서 내가 발견한 방법 내지는 팁을 언급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나 부끄럽게도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한 상태다. 위에서 언급한 n개 컨텍스트를 이용한 동시 개발, 개발과 코드 리뷰의 동시 진행, 개발과 비즈니스 단 단순 반복 업무의 동시 진행, 두뇌 회복을 위한 전략적 휴식 등 다양한 전략을 실험해 봤으나 전부 영 마뜩잖다. 유일하게 찾은 정답이라면 컨텍스트 스위칭을 피해서 집중할 방법이 아니라 정면으로 맞서 싸울 방법, 서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점일 텐데 수십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는 컨텍스트 스위칭에 최적화된 뇌를 만들어내지 않았기에 이는 생물학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 수렵채집 사회에서 단일 목표에의 집중에 특화된 사람과 컨텍스트 스위칭에 특화된 사람 중 누가 더 잘 살아남고 유전자를 후대로 퍼뜨릴 수 있었겠는가?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나 스스로가 남들에 비해 컨텍스트 스위칭 코스트가 적은 편이라는 점이겠다. 운동에 빗대자면 마라톤을 해야 했던 창업가들이 이제는 개조되고 강화된 사이보그 신체로 크로스핏을 해야 하는 느낌이다. 여하튼 창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는 적응력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래서 이러한 변화에도 적절히 적응해야 한다. 여기에도 답을 찾지 못하고 성공하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코즈적 특이점

링크드인 혹은 스레드에서 우연히 접하고 읽어야지, 읽어야지 벼르고 있었던 논문을 드디어 읽었다. 제목은 <The Coasean Singluarity? Demand, Supply, and Market Design with AI Agents>. MIT와 하버드의 경제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논문으로, AI Agent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수요-공급 법칙과 시장 경제 체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다양한 시각을 제시하고 검토한다. 두괄식으로 말하자면 기대에 비해 아쉬웠다. AI가 기존 경제 체제를 통째로 허물 잠재력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 구조가 해체될 것이라는 논문의 핵심 테마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과 겹치기에 매력을 느껴 읽었는데,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리라 기대했건만 영 심심했다. 흥미로운 구조화 방식이 몇 눈에 띄었으나 깊이 혹은 예리함이 느껴지지는 않는 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논문에서 이야기하는 ‘Coasean Singularity’ 즉 ‘코즈적 특이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AI 시대의 창업가로서 그리고 AI 시대의 개인으로서 숙고해 볼 필요는 있다. 코즈적 특이점에서 '코즈(Coase)'란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는 1937년 자신의 논문에서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시장의 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비싸기 때문이다’라는 요지의 통찰을 제시한 바 있다. 허나 거래 비용을 구성하는 활동들인 가격 학습, 조건 협상, 계약서 작성, 상황 모니터링 등이 모두 AI 에이전트에 의해 0에 수렴하는 한계 비용으로 수행될 수 있는바, 에이전트가 실제로 이러한 기능들을 효과적이고 저렴하게 실행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기업 조직과 시장 구조가 형성되는 전통적인 방식에 심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내용이 본 논문의 핵심이다.

이것은 특정 카테고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AI의 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상회함에 따라 컨설팅펌의 소멸을 예측하고(물론 AI가 아니더라도 진작 소멸해야 마땅한 업이다), 사티야 나델라가 ‘SaaS is dead’라 이야기했듯 제품 개발에 필요한 시간이 비약적으로 줄어듦에 따라 SaaS 회사의 소멸을 예측하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다. 코즈적 특이점의 도래는 논리적으로 문자 그대로 절대다수 기업의 소멸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문제다. 요새 1)파운데이션 모델을 소유한 기업과 2)소비재 브랜드 기업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기업이 남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종종 내뱉곤 하는데 아직 생각이 충분히 정리되지는 않아 길게 쓰지는 못하겠다. 요새 생각하기로는 1)과 2) 이외의 기업들이 맡고 있는 영역은 1) 혹은 2)에 해당하는 기업들에 의해 AGI 시대에는 충분히 수행될 수 있을 것 같아서...

본래의 논의로 돌아가자면 가령 틴더와 같은 데이팅 앱을 떠올려볼 수 있을 것이다. 가볍든 진지하든 간에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니즈는 잠재적으로 이성적 관계(서술의 편의상 동성애를 배제하였다)를 맺을 수 있는 대상의 구인일 텐데, 구태여 별도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자연 상태로 자신의 조건에 부합하는 이성을 탐색할 때의 ’거래 비용’이 지나치게 높은 탓이다. 그러나 자신의 가치관, 유머 코드, 대화 방식 등을 학습한 AI 에이전트가 이를테면 ‘Meta for Couple’같은 이름으로 개인에게 귀속되어, AI 에이전트끼리 내가 자는 동안 대화를 나누고 내게 운명의 짝을 찾아준다면? 거래 비용을 줄이고자 거래 참여자들을 한곳에 모아놓음으로써 가치를 창출했던 기존의 플랫폼들은 유명무실해지고, 상술한 논리가 비단 데이팅 앱뿐만 아니라 수많은 플랫폼 비즈니스에 적용될 수 있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글은 정말이지 무서운 기업이다. 제미나이, 구글의 기본 서치 바, 유튜브, 지메일, 구글 드라이브, 크롬 브라우저를 한 회사가 소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세상은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곳에는 일종의 Arbitrage가 존재하는 것이고, 내 생각에 구글은 아직도 저평가되어 있다. 5년 내에 구글은 역사상 최초의 $10T 기업이 될 것이다. 현재의 좋지 못한 현금 흐름 탓에 구글을 더 사지 못하는 게 한이다. 그다음은 메타.

루틴 리뷰하기

서울대입구 고시원 살며 6시 반 기상 - 1시간 운동 - 8시 출근 - 아침식사와 명상 - 프레퍼스로 점심식사 - 계속 일하다가 10시 반쯤 퇴근하는 루틴을 어언 세 달 가까이 지켜 왔는데 한 번쯤 리뷰할 타이밍이 온 것 같아 나름의 회고를 해보자면 다음과 같은 득실이 있었다.

[좋은 점]

  1. 삶의 만족도가 이를테면 작년에 학교 다닐 때 혹은 당근마켓 다닐 때 대비 현저히 상승했다. 나는 기질적으로 규칙적인 삶이 잘 맞고 규칙적인 삶을 남들보다 훨씬 쉽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2. 몸과 마음 모두의 항상성이 크게 증가했음을 체감한다. 이를테면 하루 잠을 덜 자도 딱히 피곤하지 않고, 하루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누적되면 힘드니 주의해야 한다. 이를테면 매일 7시간 반을 자다가(즉 루틴을 지키다가) 하루 4시간을 자면 살만한데, 매일 6시간을 자면 힘들다.

  3. 프레퍼스가 은근 맛있다. 닭가슴살 커리랑 돼지고기 명이나물 덮밥은 정말 매일 먹을 수 있고, 닭가슴살 데리야키 덮밥은 조금 힘들다. 더불어 원래 먹었던 아침식사는 정말 끔찍했는데 닭가슴살 점보 볶음밥으로 바꾸고 나서 훨씬 먹을 만해졌다. 아마 식사 루틴을 깨면 역체감이 크게 될 것 같다.

  4. 삶을 미니멀하게 유지하는 소거법을 실행함으로써 내 삶에서의 Vitamin과 Painkiller를 이전보다 효과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메타 인지 레벨이 상승했다. 이를테면 집이 좁더라도,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빔프로젝터를 틀어놓고 자지 않더라도 살아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는 없다. 그러나 가령 바퀴벌레 나오는 집에서는 못 산다. '어디까지 덜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보완할 점]

  1. 군 전역 이후 외모 저점을 찍었다. 맨날 똑같은 옷 입고 똑같은 신발 신고, 피부 관리도 대충, 머리도 짧게 치고… 지금의 삶에서 외모의 우선순위가 높지 않음을 알고 그래서 이러고 있지만 멋지고 잘생겨 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 본성인지라. 그런데 이 시기에 어언 2년 반 만에 연애를 시작했음은 대단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짧은 머리가 슬슬 지겨워지는 한편 도대체 이를 고수하는 것의 효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어서 이것만큼은 바꿀까 생각 중이다.

  2. 두 집 살림(literally)은 할 게 못된다. 약속이 있는 날이면 영등포 집을 들러서 옷을 챙기고 약속이 끝난 후 다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서울대입구 고시원으로 가야 하는데, 시간도 많이 뺏기고 영 귀찮다. 빨리 서울대입구로 이사를 가든 해야지...

  3. 몇몇 루틴의 수행률이 낮았다. 명상은 거진 매일 했지만 점점 실력이 하락하는 인상을 받고, 데일리 회고와 감사일기 작성을 까먹고 하지 못한 날이 많았다. 특히 11월에는 평균 수면 시간이 6시간까지 떨어졌고, 자기 전 폰 안 보기 루틴을 단 하루도 지키지 못했으며, 금주를 깼다. 하도 오랜만에 연애를 하니 불가항력에 가까운 도파민이 쏟아진 탓인데, 모쪼록 행복했으면 된 거다! 변수를 상수화하는 방향으로 최적화를 진행할 필요는 느끼고 있다.

  4. 생각보다 몸이 빠르게 좋아지는 느낌이 안 든다. 린매스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원래 느린 방법이라지만 체감이 잘되지 않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다양한 내/외부 변수에 의해 루틴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수정되겠지만 여하튼 나는 죽을 때까지 규칙적으로 살아야지 싶다. 그러한 방식으로 살게끔 유전적으로 설계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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