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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9월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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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직주근접#고시원#창업
목차

고시원 루틴

어떠한 의미에서든 제법 많은 업데이트가 있었던 9월이었다. 처음부터 삶을 몽땅 재구성할 생각은 없었는데, 오피스 함께 쓰는 친구들과 몇 달 전 밥을 먹던 중 설입에 살지 않는 남자 셋이 방 하나 잡고 잠만 자면 어떻겠냐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출퇴근 시간을 독서로 채워 나름대로 알차게 사용하고 있긴 했지만 어찌 됐건 길 위에서 1시간 반을 낭비하는 데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기에 시간이 흘러 당시의 멤버들 중 몇몇이 떠난 후에도 직주 근접에 대한 희망은 진지해져 갔다. 코파운더 친구와 둘이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려 했으나 그런 곳들은 거진 1년 이상의 계약이 필수적이었고 전세 계약 해지까지는 반 년이 남았기에 필연적으로 불확실한 나머지 반 년의 터전을 섣불리 확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곰곰이 고민하다 나 혼자라도 가까이 사는 방법까지 생각이 미쳤고 그 길로 별 고민 없이 설입 고시원을 계약했다. 월 40+시간을 40만 원에 산다고 생각하면 내 1시간의 가치가 1만 원을 초과할 테니 ROI가 나온다고 봤다. 살아보니 살 만은 한데 환기도 안 되고 오래는 못 살겠기에, 성공에의 압력이 하나 추가됐다.

사는 곳의 변화는 불가피한 방식으로 쓰이는 시간을 줄여 생활 패턴의 변화를 가능케 했기에 이참에 철저한 루틴을 설계했다. 창업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기에 최소한 n년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그리고 심신 모두를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최근 인상 깊게 읽은 후로 간식을 먹고 운동을 하는 등의 신체적 활동이 초래하는 사소한 호르몬 변화가 의사결정과 퍼포먼스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깨닫고 신체와 정신 모두를 관리하는 데에 만전을 기울였다. 내 생각에는 기업과 스포츠 팀 간에는 제법 많은 공통점이 존재하고 따라서 이로부터 파생하여 창업가와 운동선수를 도식적으로 겹쳐볼 수 있는데, 둘 중 운동선수만이 그들의 라이프스타일과 관련하여 일류의 코칭을 받는다. 그렇다면 심신 관리와 루틴의 측면에서 일론 머스크와 스티브 잡스의 광기가 아니라 코비 브라이언트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항상성을 본받는 편이 아무래도 낫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젠슨 황, 샘 알트만, 제프 베조스 등은 이미 지독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관리하는 루틴을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담이지만 996이든 주 100시간이든 긴 업무 시간을 숭상하는 데에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 있지만 늦은 취침과 짧은 수면을 숭상하고 과시하는 것은 그야말로 정신 나간 행동이라고밖에는 못하겠다. 늦게 자서 늦게 일어난다면 똑같은 시간을 자며 골든 타임을 놓치니 자랑할 것이 못 되고,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난다면 최상의 효율로 일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자랑할 것이 못 된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 이는 본인의 AI 활용 능력이 저열함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밖에 더 되나.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싶다. 비단 창업뿐만 아니라 두뇌와 신체를 활용하여 최고의 효율을 내야 하는 직업군이라면 어디든 적용되는 이야기다. 우리는 K-창업가 GOAT 정주영 회장님께서 ‘잠 덜 잔다고 자랑하는 사람은 병자 아니면 사기꾼’이라 하셨던 말씀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규칙을 지키고 있는데, 딱히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언제가 될지 모를 훗날 다시 본다면 뜻깊을 것 같아 그리고 마음이 흔들릴 때면 참고하기 위해 남겨둔다.

6시 30분 기상 후 1시간 운동 : 폰은 절대 보지 않으며 노래도 듣지 않는다. 주 4회 웨이트와 2회 카디오로 총 6회 운동을 목표로 하고, 일요일은 휴식!

8시 출근, 프로틴 1스쿱 + 잠백이 닭가슴살 밀키트로 아침식사

아침식사 후 Calm 이용해서 10분-15분 명상 : 충분히 만족스러우나 최근 브라이언 체스키, 레이 달리오 등 인터뷰/저서에서 초월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들이 많아 초월명상과 관련된 내용을 최근에는 찾아보고 있다.

점심 식사는 미팅이나 약속이 있지 않는 한 무조건 프레퍼스에서 먹기

22시 30분 즈음 퇴근 후 30분 독서, 23시-23시 30분 사이 취침

매일 감사일기 작성 및 데일리 회고 작성, 그 외 체중/수면 시간/에너지 레벨 등을 기록하기

자기 전 30분 폰 안 보기 : 성인이 된 후 수도 없이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1주일 이상 지켜본 적 없는데, 갤럭시 수면 모드를 이용하여 23시 30분 이후에 전화, 문자, 카메라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한 앱의 실행을 원천 차단함으로써 드디어 성공했다.

매일 똑같은 옷 입기 : 물론 한 벌을 돌려 입지는 않고, 무신사 스탠다드에서 똑같은 디자인으로 여러 벌 샀다. 엄마(ESTJ)가 니가 마크 저커버근줄 아냐?라고 하셨다ㅠ

다시 아이비리그컷으로 돌아가 왁스와 스프레이 없이 손질 가능한 헤어스타일 유지하기 : 다음에는 더 짧게 자를까도 고민된다.

금주 : 치앙마이 갈 때 업어온 카발란 비노바리끄가 사무치게 아깝지만 여하튼 두 달 정도 됐다.

1주일에 하루는 6시에 퇴근해 약속을 가거나 요리, 영화 등의 취미 생활을 즐기기 : 요새 좋은 영화가 정말 많아서 행복하다.

인스타 비활성화 : 잠깐 풀었는데 풀고 나서 1주일 안에 비활성화를 못하더라. 자꾸 보게 되어서 어서 다시 비활성화해야겠다.

이렇게 산지 2주 정도 된 것 같은데, 요사이 급변한 삶의 양태가 굉장히 만족스러워 올해 가장 행복한 한 달을 보냈다. 남들에게는 일이지만 내게는 놀이처럼 느껴지는 것이 재능이라 하니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이 규칙적인 삶을 유지하는 능력이야말로 내 적성이고 슈퍼파워다. 초등학생 때부터 별 고민 없이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윤선생 영어 학습지를 풀었었는데, 그때는 그게 특별한 건지 몰랐다. 덕분에 작심삼일의 걱정은 전혀 들지 않고 계속해서 최적화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다. 다음 달엔 수면 시간을 조금 더 늘리고, 업무 중 컨텍스트 스위칭을 면밀히 관리하고, 주말 독서를 루틴화할 방법을 찾아봐야지. 좋은 운동선수를 만드는 것이 근력과 지구력의 곱이듯 좋은 창업가를 만드는 것이 지능과 자기 통제력의 곱이라면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가을이라 세로토닌이 줄고 멜라토닌이 늘어서 그런지 특히 검정치마 노래 틀어놓고 밤공기를 맞으며 일할 때면 Nostalgic한 감정이 찾아와 흔들릴 때도 있지만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별거 아니라 그러려니 하고 보내준다. 남들보다 사람 덜 좋아하고 덜 소셜한 성향 때문에 성장 과정에서는 힘든 적이 많았다만 이럴 땐 편하다.


맥북

중학교 때 요긴하게 썼던 아이패드 2세대 이후로 십수 년 만에 애플 제품을 샀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패드는 ITQ 컴퓨터 대회 나가서 1등 하고 받은 부상이었으니 내돈내산은 인생 처음. 2년 반 전에 샀던 갤럭시 북3 프로가 안락사 신호를 보내기에 눈물을 머금고 보내드렸다. 나름 삼성의 역작이라고 불린 제품이었거늘… 갤럭시 북을 썼을 동안 개발과 담쌓고 지냈기에 브라우저 여러 개 띄우고 장표 찍기 이상의 무거운 작업을 시킨 바 없건만 2년 반 만에 돌아가셨다. 심지어 방금 생각난 사실인데 보유 기간 중 절반 이상을 회사에 다녀서 숨 쉴 틈도 많이 줬는데 도대체 왜? 첫 반 년이 지나고 나서는 도저히 플래그십 제품군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끔찍한 퍼포먼스를 보였는데, 뽑기 운이 안 좋았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빌 게이츠마냥 이재용이 공짜로 선물하지 않는 이상 내 인생에 삼성 노트북은 다신 없지 않을까 싶다. 램 16GB면 모자라지는 않건만 크롬 + 노션 + 슬랙 + 커서 정도로 렉걸리는게 말이 되는지;; 이걸 몇 주 더 쓰다가는 명이 줄어들 것 같아서 여유롭지는 않으나 과감히 결정했다.

다음 노트북 브랜드를 정하는 데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으니 당근 인턴 시절 받아서 사용한 맥북의 경험이 어마어마하게 좋았던 탓이다. M3였는지 M4였는지 확인은 하지 못했다만 여하튼 램은 16GB였는데 나는 살면서 노트북이 이리도 부드럽게 작동할 수 있는 기계임을 처음 알았다. 그리하여 아무런 고민 없이 맥북으로의 전환을 결심했고 5년 넘게 쓴다는 생각으로 큰맘 먹고 M4 Pro로 질렀다. 하루라도 빨리 쓰고 싶어 난생 처음 가는 애플 스토어에서 픽업을 했는데 불균질한 방식으로 균질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참으로 적당한 접객에 홀려 매직 키보드와 매직 트랙패드까지 질렀다. 거기에 쓰다 보니 손목 닿는 부분이 걸리적거려 7만 원짜리 매직 키보드 & 매직 트랙패드 전용 팜레스트까지… 순도 100% 내돈내산으로는 인생 최대 소비였으니 조비 에비에이션 2배 떡상 수익실현이 아니었다면 제법 쪼들렸을 테다.

폰, 태블릿, 워치, 이어폰까지 전부 삼성 제품 쓰면서 노트북만 맥북으로 바꾸면 불편하지 않느냐 묻는 이들이 있는데 놀랍게도 조금의 불편함도 느끼지 못한다. 만약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다시 말해 애플 생태계에서 노트북을 윈도우 제품으로 바꾸거나 폰을 안드로이드 제품으로 바꿨다면 제법 불편했을 것 같은데, 삼성 생태계의 경우 체감 가능한 이점이 전무하다시피 해서… 삼성 노트는 하도 구려서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수준이고, 사용하던 어플리케이션을 연동하여 쓰게 해주는 경우가 있는데 어쩔 땐 되고 어쩔 땐 안되고 제대로 작동도 안 한다. 버즈 이어폰을 폰과 노트북 모두에 연동한 후 번갈아 연결하며 사용하곤 하는데 갤럭시 북을 사용했을 때보다 맥북을 쓸 때의 전환이 훨씬 매끄러워 제법 당황스러웠다.

이제 3주 정도 썼는데, 당근 때도 느꼈지만 정말 탁월하다. 거짓말 안 치고 IQ가 10 정도는 올라간 느낌? 램도 16GB에서 24GB로 늘어났기에 수많은 프로그램의 원활한 동시 실행이 늘어난 램 용량 탓인지 맥-특이적 메모리 아키텍처의 효율 탓인지(아마 둘 다일 것이다)야 미지수지만 여하튼 돈값 하고도 남는다. 칩, OS, 하드웨어의 수직적 통합으로부터 기인하는 특유의 부드러움도 놀라운 수준. 뿐만 아니라 터미널 세팅도 훨씬 편하고, 미션 컨트롤과 트랙패드 제스처의 조합 덕에 생산성의 상승 또한 체감되고, 폰트도 압도적으로 예쁘다. 무엇보다 스타벅스에서 쫓겨나지 않고 당당하게 노트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굿~


멋진 신세계

빡빡이 또한 쿨링을 위한 전략적 설계?

데미스 하사비스 왈 AGI가 2030년 즈음 만들어진단다. 내 생각에 데미스 하사비스는 AGI의 도착 시기와 관련해 전 지구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다. 샘 알트만과 다리오 아모데이와 같이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는 사람들 말은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다. 실제로 그들의 발언은 하사비스와 저커버그 대비 현저히 급진적으로, FOMO를 불러일으키기 최적화된 방식으로 직조된다. 필연적으로 불투명할 수밖에 없는 작자들이다.

AGI가 등장하는 순간 세상은 천지개벽할 것이다. 최근의 기술 발전 추이로 보면 인간의 신체를 활용하는 업무에 범용적으로 투입될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도착이 AGI에 비해 이르면 일렀지 결코 늦지는 않을 것 같아서, 몸이 먼저 머리가 그다음에 완성되는 순간에 이르러 인간이 일을 해야 할 당위와 가능성 모두가 소멸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역사는 반복되는 바 산업혁명이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수를 증가케 만들었듯 지금껏 상상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제기되나, AGI의 본질적 정의를 고려했을 때 역사적 반복에 뿌리를 둔 낙관론은 나이브하다. 인간의 비교우위는 자의식뿐이고 재교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류세에 접어든 이래 가장 거대하고 본질적인 변화가 몇 년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세상은 집채만 한 파도에 아직까지 조금도 대비되지 않은 듯 보인다. 무책임한 기업체들은 영원한 안정적 고용을 약속하며 사회 초년생들을 꾀는데, 대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직업 전선에 뛰어드는 이들에게도 책임이 없지는 않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보편적 기본소득(이하 UBI)에 대한 논의의 시도마저 포퓰리즘으로 환원되는 세상에서 실업, 전례 없는 풍요, 극단적 양극화, 디플레이션, 절대다수 기업의 종말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어찌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러니 <컬처> 속 유토피아도 <1984> 속 디스토피아도 아닌 <멋진 신세계> 속 유토피아로 가장한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찾아올 미래의 충격을 완화하고 원만한 전환을 가능케 하는 것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소마와 촉감 영화에 취해 살아가는 세상이 영속할 수 없었듯 UBI 이후의 현실 세계가 메타버스 속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기본소득으로 흥청망청 쇼핑이나 하는 식으로 직조되지는 않을 것이니, 가장 고등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사람들이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그곳에 가닿을 수 있게끔 만드는 것이 지금의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도전적인 사명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미래의 우점종인 1인 사업가의 프로토타입으로서 크리에이터를 상정하고 그들을 위한 제품(https://getarkos.com)을 만들고 있는데, 해당 진술이 자명하긴 하나 모두가 유튜브를 찍고 모두가 틱톡커가 되지는 않을 것 또한 자명하기에 이것이 굉장히 나이브하고 게으른 생각임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말하자면 미래가 내 손아귀 밖에서 흘러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다 사다리를 판매하는 것보다 미래를 나서서 설계하는 편이 사업을 하는 데에도 유리할 것이고 무엇보다 가치 있다. 이것은 정말이지 SF 소설가의 사고방식을 빌려야 하는 작업이라 실제로 <멋진 신세계>를 재독할 계획이고 도움이 될만한 작품을 여럿 찾아보고 있는데, 어찌 됐건 2025년을 쌩쌩한 두뇌로 살아가는 내가 미래를 예측하기에 집필 당시의 아이작 아시모프, 그렉 이건 등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사실인지라 맹목적인 앵무새가 되기보다는 독립적인 사고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일론 머스크는 인류가 화성에 가면 화성 건설 사업을 해야지, 하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인류를 화성에 보내기 위해 로켓 사업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고 이것이 그가 진정한 가치 창출자이고 위인인 이유다. 인류가 화성에 도착한 후 건설 사업을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인류를 화성에 보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과는 진척 내지는 진보의 정도가 크게 달랐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AGI가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미래를 내가 간절히 바란다는 것이겠다. 다시, <멋진 신세계> 속 포디즘 세계정부에 의해 암시적으로 지배당하는 미래는 제법 확률 높으나 이상적이지는 않다. 그러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소마의 장복 따위에 놓여있지 않으리라 믿기에 인간들이 소마를 추종하지 않을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허나 경제학적 비교열위에 처한 인간들이 전통적인 의미의 일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고 따라서 새로운 형태의 일을 반드시 개발해야 한다. 이는 AGI에 의해 복제되지 않을 인간의 비교우위, 가령 물리적/시간적 현존, 관계와 맥락, 개인의 신뢰성과 명성, 가치관과 철학 등에 발 딛고 설 터이다. 이들은 진정성(Authenticity)으로 한 데 모여 수렴하니 상기한 미래의 새로운 일이라 함은 결국 진정성의 비즈니스가 될 것이고, 어떻게 하면 모든 개인이 자신만의 진정성을 발견하고 가치(그것이 자본주의적 의미이든, 인본주의적 의미이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내게 그리고 이 시대에 던져진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AGI가 수많은 현실적 제약을 해결할 테니 아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잘 해야 한다.


카카오 변호하기

카카오톡 사태가 심상치 않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 평점은 1.1을 지나 1.0에 이르렀고 적어도 내 기억 속에 지금의 카카오 수준으로 범국민적인 비난에 직면해야 했던 기업은 없었다. 옥시, 남양, SPC 등 역시나 범국민적 비난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기업들의 종착지는 일반적으로 불매운동이었는데, 카카오톡을 위시한 카카오 플랫폼의 우점적 지위로 인한 불매운동의 불가능성과 압도적 인지도가 합쳐져 역설적으로 언어화된 비난의 증가를 야기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카카오는 참으로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지만 단군 이래 가장 욕을 많이 먹은 기업이 된 셈이다.

대격변 이후의 카카오톡이 유저 입장에서 좋은 UI/UX라 묻는다면 사실 별생각이 없긴 하지만 어쨌건 기존에 자주 사용하던 몇몇 기능들을 찾기 어려워졌거나 그곳에 닿기 위한 퍼널이 늘어났기에 맘에 안 들긴 한다. 그러나 개인의 호불호와 별개로 기업의 입장에서 필요한 움직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비즈니스 세계에는 모멘텀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것이 어떤 역치를 넘어가면 기술/시장 단에서 소위 패러다임 변화라 부를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웬만해서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게 된다. 이것을 경영학적으로 말하자면 선점 효과, 브랜딩, 마케팅, 각인 효과, 네트워크 효과 등의 총합일 것이다. 이를테면 신세계가 아무리 알리바바와 손을 잡든 지마켓을 인수하든 그들은 때려죽여도 - 설령 경영진을 서로 뒤바꾼다 하더라도 - 쿠팡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카카오톡도 마찬가지인데, 제아무리 저커버그 할아버지가 온다 한들 인스타그램에게 빼앗긴 Gen Z의 일상적 체류 시간을 되찾아올 수는 없다.

나는 정보 비대칭성을 감안했을 때 카카오가 세상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니 감히 추측해 보자면, PR을 어떻게 했든 간에 이같은 결정의 기저에는 ‘카카오톡을 제2의 인스타그램으로 만들겠다’라기보다는 ‘어차피 카카오톡이 인스타그램의 파이를 빼앗아오긴 글렀고, 또한 어차피 사람들은 카카오톡을 떠날 수 없을 테니, 인당 광고 노출 시간을 늘려 돈이라도 더 벌자’라는 차갑기 그지없는 논리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카카오톡의 UI/UX 변화는 대단히 리즈너블하다. 친구 목록 UI보다 피드 UI는 현저히 Scrollable하고 따라서 구좌의 노출 가능성과 가격까지 현저히 높아질 수밖에 없으니... 이미 밉보일 대로 밉보인 기업인 바 가만히 말라죽으니 돈이라도 벌어보겠다는데 뭐라 덧붙일 수 있겠는가.

내수용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그런지 초반에 카카오톡에는 광고 붙이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을 번복해서 그런지 카카오가 돈 좀 벌어보겠다 하면 이상하게 대역 죄인 취급을 당한다. 잠깐 다른 길로 새자면 도대체 한국에서만 돈 벌겠다는 게 왜 문제인가? 모바일 패러다임의 시대정신은 분명 Localization이었고, 쿠팡 토스 당근 두나무 전부 최소한 아직까지는 내수용 기업이지 않은가. 심지어 카카오의 해외 매출 비중은 흔히 비슷한 체급으로 묶이는 네이버보다 높다! 카카오의 소위 문어발식 확장에 의한 골목상권의 잠식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어차피 좁아터진 대한민국 시장에서 모바일 앱으로 장사하는 기업의 미래는 슈퍼 앱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지 않나. 여하튼 카카오는 그들이 만들어낸 가치에 비해 대우를 못 받는 면이 없지 않다.

요약하자면 상술했듯 카카오톡의 새로운 UI/UX는 마음에 들지 않으나 비즈니스 단에서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생각하고, 카카오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 + 동질적 민족인 한국인에게서 유독 심하게 발현하는 밴드왜건 효과 + 홍민택 CPO에 대한 블라인드발 괴담이 합쳐져 필요 이상의 비난을 받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SKT, KT에 비해 체감상 몇 배는 더 욕을 먹는 것 같다. 작금의 비난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나도 욕했기에(카톡으로...) 분명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만 이것이 안 그래도 미국 빅테크 대비 열등할 수밖에 없는 국내 IT 기업들의 도전정신을 더욱 위축시킬까 걱정이다. 상식적으로 이 정도 거대한 변혁을 두고 - 특히 카카오톡의 성격과 본 업데이트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 어떻게 A/B 테스트 같은 걸 하겠나. 어마어마한 실책임에는 틀림없으나 거국적으로 너그러워질 당위는 있지 않을까. 그럼에도 도저히 못 참아주겠다면 직접 만들면 되는데 바이브 코딩으로 메신저 뚝딱 만들어 낸다고 될 일은 아니니 결코 쉬운 싸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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